사드르 주도 행군자동맹
예상 뒤엎고 선두 차지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을 마무리한 중동에서 미국과 이란의 동서 전쟁 분위기가 끓어 오르면서 12일 치러진 이라크 총선은 당초 양측의 영향력 경쟁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정작 선거 결과 미국과 이란, 양측의 개입을 모두 경계하는 민족주의 성향의 시아파 성직자 무크타다 사드르의 ‘행군자동맹’이 예상을 뒤집고 승리했다.
AFP통신과 로이터통신은 14일(현지시간) 이라크 총선 잠정 집계 결과 사드르가 주도하는 행군자동맹이 가장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라크 18개주 가운데 수도 바그다드를 포함한 6개주에서 선두를 차지했고 4개주에서는 2위에 올랐다. 뒤를 이은 것은 하디 아미리가 이끄는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 주축 ‘정복동맹’으로, 4개주에서 1위, 8개주에서 2위를 달리고 있다.
IS와의 전쟁에서 미국 주도 국제동맹군과 긴밀히 협조했고 당초 최다득표를 달성할 것으로 분석됐던 하이다르 압바디 현 총리의 ‘승리’ 동맹은 전체 득표율 3위에 머물렀다. 같은 여당 세력이었으나 그와 결별해 독자 출마한 누리 알 말리키 전 총리의 법치연합은 4위로 처졌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IS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북부 쿠르드 자치정부의 독립 시도마저 제압하는 등 거침 없는 행보로 압바디 총리의 총선 승리는 확실시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44%에 불과한 투표율이 보여주듯,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압바디 총리의 야망을 좌절시켰다. 이라크 유권자들은 페이스북에 “나는 투표하지 않겠다”고 적힌 로고를 사진으로 내걸고 보이콧 운동까지 벌였다.
이라크 민중의 평가는 애초에 IS의 등장과 영향력 확대를 낳은 원인이 집권세력의 부정부패와 종파주의에 있다는 것이었다. 선두로 치고 나온 사드르는 이런 민심을 잘 파고들었다. 2016년 사회주의자들과 손잡고 바그다드의 정부기관이 결집한 요새 ‘그린 존’을 점거하는 시위를 벌이는 등 시아파가 다수인 도시 빈민의 입장을 적극 대변해 왔다. 올해 총선에서도 “이라크를 좀먹는 부패와 종파주의와 맞서는 세력이라면 누구와도 연합하겠다”라는 일성과 함께 세속주의 정당 공산당과 손을 잡으면서 선거에 대약진을 이뤘다.
미국과 이란 모두를 경계하는 사드르의 반외세 성향 역시 종파주의 탈피를 바라는 유권자들의 입장과 들어맞았다. 사드르는 사담 후세인 정권이 미국 침공으로 무너졌을 때 반미 민병대를 조직해 활동했던 인물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미국 쪽에는 유화적으로 변했다.
현재는 시아파 민병대를 앞세워 영향력을 늘리려는 이란에 대한 경계심을 내비치고 있다. 사드르는 이란이 바샤르 알아사드 현 시리아 대통령을 지원하는데 반감을 드러냈고,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가 지나치게 통제되지 않는다고 비판한 바 있다. 지난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를 차례로 방문하고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회동한 것도 이란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행보로 평가됐다.
한편 비록 총선에서 선두에 나섰지만 성직자인 사드르 본인이 정치에 직접 나설 가능성은 낮다. 게다가 암묵의 원칙에 따라 종파ㆍ부족별로 자리를 나눠 권력을 분점하는 이라크 정부의 특성상 연정 협상이 불가피하다. 연정의 핵심 파트너로는 아바디 현 총리가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지만, 다른 정파도 끌어들여야 하기에 정부를 완전히 구성하기 위해서는 수 개월간의 협상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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