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흥망성쇠를 회고하는 책 ‘헐리웃 문화혁명’를 보면 페이 더너웨이와 줄리 크리스티 등 당시 활약했던 할리우드 여배우들의 소소한 에피소드가 아주 재미있다.
이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들 가운데 꽤 흥미로웠던 대목은 ‘슈퍼맨’ 시리즈에서 슈퍼맨의 연인 로이스 레인을 연기했던 마곳 키더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책에 따르면 캐나다 출신의 키더는 브라이언 드 팔머 감독의 1972년작 ‘시스터즈’에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스타덤에 오르기 시작하지만, 실은 그 전부터 할리우드 감독들과 제작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개성 만점의 미모와 자유분방한 성품으로 밤마다 벌어지는 파티를 주름잡는(?) 와중에도, 총명한 두뇌와 뛰어난 연기력을 높이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마약 흡입과 난교를 일삼던 수많은 남성 감독들과 제작자들 사이에서 때론 그들과 질펀하게 어울리기도 했으나,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데 있어선 무척 영리하고 부지런한 연기자였다.
이후 로버트 레드퍼드와 함께 출연한 1975년작 ‘그레이트 왈도 페퍼’, 크리스토퍼 리브와 호흡을 맞춘 1978년작 ‘슈퍼맨’ 등으로 연기 인생의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1980년대 초반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몰락과 함께 급격한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급기야는 1990년대 중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에 걸려 파산후 노숙자로 전락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낙마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크리스토퍼 리브와 더불어 ‘슈퍼맨의 저주’에 희생됐다는 가십까지 낳았다.
이처럼 1990년대를 덧없이 흘려보내고난 뒤 2000년대로 접어들며 재기를 시도했다. 활동 무대를 안방극장으로 옮겨, 2014년 ‘R.L 스타인의 헌팅 아워’로 에미상을 품에 안기도 했다.
말년의 그를 돋보이게 한 건 연기가 아닌 사회 참여였다. 걸프전 반대 운동을 이끌고, 지난 미국 대선에선 버니 샌더스 민주당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등 정의롭고 공정한 미국을 만드는데 앞장섰다.
그리고 마침내 13일(현지시간) 미 몬태나 주의 자택에서 향년 69세로 눈을 감았다.
굵고 짧았던 전성기와 길고 불행했던 시간을 거쳐 의미있는 행보로 삶을 마무리한 키더가 ‘슈퍼맨’의 한 장면처럼 크리스토퍼 리브와 함께 하늘을 날게 됐다.
조성준 기자 when914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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