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아닌 ‘충분한 비핵화’ 전망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6ㆍ12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기대하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아닌, 핵 위협을 대폭 감소시키는 SVID(Sufficient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 즉 ‘충분한 비핵화’ 정도의 선언적 합의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4ㆍ27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조성된 평화무드 속에서도 김정은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태 전 공사는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과 남북관계 전망’ 초청 강연과 자신의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태영호의 증언’ 기자간담회에 잇달아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1992년 남북 비핵화 선언과 마찬가지로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에 한해 제한적 사찰을 실시하는 절충안이 제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이는 대입시험에서 수험생과 대학이 문제를 합의하고 시험을 치르자고 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태 전 공사가 비핵화를 허상이라 본 이유는 북한의 최우선 목표가 체제 유지, 즉 김일성 가문의 세습을 보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북한이 CVID의 핵심인 강제 사찰, 무작위 접근을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하다고 태 전 공사는 주장했다. 그는 “북한 내부에서 김정은은 하느님 같은 존재”라며 “외부 세력이 북한에 들어가 보고 싶은 곳, 의심되는 곳을 불시에 뒤져보겠다는 것은 핵폐기를 이용해 수령절대구조를 허물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같은 이유로 태 전 공사는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식 개혁개방 모델을 수용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모델의 핵심은 사상해방인데 북한에서의 사상해방은 곧 정권붕괴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대신 태 전 공사는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개성식 단절 모델’, 즉 외부 정보 및 접촉을 통제하고 제한된 구역에서만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경제특구를 내륙으로 확대 도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태 전 공사는 이날 강연과 간담회에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경계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가장 위험한 결론은 북한의 핵 폐기 약속을 곧이곧대로 믿거나, 핵 있는 평화에 익숙해지는 것”이라며 “북한 체제를 똑바로 인식하고,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북에 불어넣을 우리만의 방도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력을 계속 다져 나가며 종전에는 핵에는 핵, 비대칭에는 비대칭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핵무장론도 언급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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