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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작無 #악천후… 칸의 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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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작無 #악천후… 칸의 굴욕

입력
2018.05.14 17:0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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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년과 달리 영화제 인근 한산

톱스타 줄어 “파파라치들 실망”

비바람까지 겹쳐 야외 객석 텅텅

빅토르 최 다룬 러 영화엔 관심

제71회 칸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남부도시 칸에 13일(현지시간) 비가 내리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문화공간 팔래 드 페스티발 앞을 지나고 있다. 칸=EPA 연합뉴스
제71회 칸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남부도시 칸에 13일(현지시간) 비가 내리고 있는 가운데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문화공간 팔래 드 페스티발 앞을 지나고 있다. 칸=EPA 연합뉴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칸국제영화제(칸영화제)가 맥없이 흔들리고 있다. 올해 71회를 맞은 칸영화제는 지난 8일(현지시간) 개막해 어느새 반환점에 다다랐지만, 전반부 분위기는 차분함을 넘어 냉기마저 감돈다. 열기를 끌어올리려 해도 이렇다 할 화제작이 없고 인파를 불러모을 만한 톱스타도 없어서 좀처럼 동력이 붙지 않고 있다. “화제가 없다는 게 화젯거리”라는 비아냥도 들린다.

주말을 맞은 13일 칸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건물 팔래 드 페스티벌 주변은 예년보다 눈에 띄게 한산했다. 영화제 관계자임을 증명하는 배지를 목에 건 사람들만 바쁘게 오갈 뿐, 관광객으로 보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영화 관람 티켓을 구하려 손팻말을 들고 극장 주변을 서성이는 관객들로 북적댔을 테지만, 이날은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있을 만큼 드물었다. 화제를 모을 만한 작품을 집중 배치하는 주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수시간을 기다려서라도 절실하게 보고 싶은 영화가 그만큼 없다고 평가하는 극장 밖 여론이 감지되는 장면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날씨마저 돕지 않았다. 영화제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서서히 팔래 드 페스티벌에 모여들기 시작한 이날 정오부터 천둥과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졌다. 맑고 건조한 지중해 기후로 사랑 받는 휴양지 칸에서는 쉬 경험하기 힘든 날씨다. 영화제 입장에선 흥행 악재였다. 폭우가 그친 밤에는 바람이 거세게 불어 기온까지 뚝 떨어졌다. 해변 심야 상영회는 객석이 텅 빈 채로 스크린만 번쩍거리고 있었다.

칸에서 만난 영화 관계자들은 “경쟁부문 초청작 라인업이 아쉽다”며 “영화에 대한 낮은 만족감과 실망감이 영화제 전체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다”고 입을 모았다. 한 영화수입사 관계자는 “경쟁부문 영화들은 대부분 몇 년 전에 입도선매가 됐을 테지만, 혹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다지 탐나는 영화가 없다”며 “특별히 눈길 끄는 작품이 없는 건 필름 마켓(영화 거래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12일까지 상영된 경쟁부문 영화는 전체 21편 중에 9편. 개막작인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에브리바디 노우스’부터 중국의 대가 지아장커 감독의 ‘애쉬 이스 퓨어리스트 화이트’, 프랑스 누벨바그의 전설 장 뤼크 고다르 감독의 ‘이미지의 책’ 등 개막 전 화제가 된 작품들이 두루 포함됐다. 하지만 상영 전후로만 반짝 화제몰이를 했을 뿐, 입소문으로 이어진 작품은 9일 상영된 러시아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레토’(여름 이라는 뜻) 정도밖에 없다.

한 아시아인이 13일(현지시간) 제71회 칸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남부도시 칸의 문화공간 팔래 드 페스티발 앞에 기모노를 입고 일본 전통 우산을 든 채 서있다. 주말이면 사람들로 꽉 차는 팔레 드 페스티발 앞 전경이 쓸쓸하다. 칸=EPA 연합뉴스
한 아시아인이 13일(현지시간) 제71회 칸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남부도시 칸의 문화공간 팔래 드 페스티발 앞에 기모노를 입고 일본 전통 우산을 든 채 서있다. 주말이면 사람들로 꽉 차는 팔레 드 페스티발 앞 전경이 쓸쓸하다. 칸=EPA 연합뉴스

옛 소련 시절 저항의 상징이었던 한국계 록스타 빅토르 최의 스무 살 이야기와 당시 청년들의 시대 감성을 담은 ‘레토’는 현지 일일 소식지 ‘르 필름 프랑세즈’ 별점에 참여한 평론가 15명 중 6명에게서 만점을 받아 이목을 끌었다. 빅토르 최를 연기한 한국 배우 유태오는 한국 언론뿐 아니라 세계 각국 언론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해 칸 체류 일정을 당초 계획보다 늘렸다. 그러나 영화 한두 편이 영화제 전체 분위기를 끌어올리기는 무리다.

올해 칸영화제는 레드카펫에서 셀피를 금지하고 공식 상영에 앞서 열리던 사전 언론시사회도 폐지했다. 영화의 품격과 순수성을 지키겠다는 의도다. 덕분에 잡음은 덜하지만, 온라인 화제도 덜하다. 올해는 톱스타도 칸을 많이 찾지 않았다. 할리우드 영화 ‘355’ 홍보를 위해 온 배우 제시카 채스테인, 루피타 뇽오, 페넬로페 크루즈, 판빙빙, 마리옹 코티야르, 개막작 ‘에브리바디 노우스’ 주연 하비에르 바르뎀 정도만 눈길을 끈다.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이면서 여성 영화인 82명의 성평등 요구 시위를 주도한 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올해 최고 스타다. 미 연예전문지 할리우드 리포터는 “파파라치에게는 유감스럽다”며 “올해 칸영화제가 더 작고 다양한 국적의 영화들을 위해 치러지면서 A급 스타가 없게 됐다”고 꼬집었다.

칸 시내에는 영화제 홍보물도 많이 내걸리지 않았다. 영화제 포스터는 팔래 드 페스티벌 인근에서나 보일 뿐, 칸 시내 곳곳의 주요 광고판은 곧 개봉하는 할리우드 영화 ‘데드풀2’로 도배돼 있다. 칸영화제가 블록버스터 시리즈의 파괴력에 밀려난 듯한 모양새로 비친다.

영화제 전반부가 아쉬운 만큼 16일 첫 공개되는 영화 ‘버닝’에 더 큰 기대가 쏠리고 있다. 후반부에 상영되는 영화들이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게 영화제 통설이다. 하지만 지금 같은 분위기면 어떤 영화가 상을 받든 반짝 화제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영화수입사 관계자는 “칸영화제에 초청되거나 수상한 영화에 대한 관심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다”며 “칸영화제가 세계 최고의 영화제인 건 틀림없지만 침체된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칸=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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