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판 위험 등 정성평가 기준 강화
‘경영진 사회적 물의’ 조항 신설
앞으로 총수 일가나 경영진의 도덕적 일탈로 평판이 추락한 기업은 재무 여력이 아무리 튼실해도 은행의 밀착 감시를 받는 재무구조 관리 대상이 될 수 있다.
금융 당국이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재무구조 평가 때 그룹의 평판 위험과 같은 정성평가 비중을 대폭 높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최근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으로 주가 하락 등 후폭풍에 시달리고 있는 한진그룹 등이 재무구조 관리 대상 기업으로 선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금융감독원은 14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주채무계열 평가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주채무계열이란 금융기관에 진 빚(신용공여액)이 많은 대기업 그룹을 말한다. 사실상 재벌의 신용 위험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인데, 금감원은 지난해 말 기준 금융권 신용공여액이 1조5,166억원 이상인 31개 계열기업군을 이번에 새로 올해 주채무계열로 선정했다. 주채무계열엔 국내 대표 대기업인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를 비롯해 최근 갑질 논란을 일으킨 한진그룹도 포함돼 있다.
주채무계열로 선정되면 주채권은행으로부터 재무구조 평가를 받게 된다. 그룹의 전체 부채비율을 따져 커트라인을 설정하고 100점 만점의 정량 평가(재무비율 기준)와 계량화가 곤란한 지배구조 위험 등의 정성 평가를 통해 기준을 밑도는 기업을 가려내는 식이다. 평가 결과 재무구조가 미흡하다고 판단되는 대기업 그룹은 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MOU)을 맺게 된다. 은행과 재무구조 MOU를 맺었다는 것 자체가 그룹의 재무구조에 비상등이 켜졌다는 신호여서 시장에서 사업자금(회사채) 등을 조달할 때 불이익을 받을 수 밖에 없다. MOU를 맺은 이후엔 은행에 부채비율을 몇 년 안에 일정 수준 이하로 줄이겠다는 내용의 자구안도 제출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못할 땐 대출 회수로 이어질 수 있다.
우선 금감원은 현행 정량 평가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대기업 그룹의 재무구조 평가를 정성 평가를 대폭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새로 신설되는 기업 평판 평가는 경영진이 횡령, 도덕적 일탈 등을 저지르거나 분식회계 같은 시장질서 문란 행위를 한 기업에 대해 가점 없이 최대 4점까지 감점만 줄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대한항공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이달 말 바뀐 제도를 반영해 한진그룹 전반의 재무구조를 평가하는데, 한진은 정성 평가에 발목이 잡혀 ‘관리 대상 기업’으로 선정될 수도 있다.
올해 주채무계열로 선정된 31개 그룹이 금융권에 진 빚은 총 240조6,000억원으로 1년 전(36개 주채무계열 270조8,000억원)보다 30조2,000억원 감소했다. 상위 5대 주채무계열은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의 순이었다. 이들 5대 계열의 신용공여액은 111조2,000억원으로, 전체 주채무계열 신용공여액의 절반 가까이인 46.2%를 차지했다. 지난해 주채무계열에 속했던 성동조선, 아주, 이랜드, 한라, 성우하이텍 등 5곳은 빠졌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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