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매체들이 지난 10일 북미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공개한 지 사흘이 지났지만 구체적인 날짜(6월 12일)와 장소(싱가포르)에 대해서는 여전히 함구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을 떠난 사이 일어날지도 모를 쿠데타 등 돌발변수에 대비하는 차원으로 보인다.
통일부 북한정보포털에 따르면 13일 기준 김 위원장의 집권 이후 공개활동은 총 941건이며, 동선이 사전에 노출된 기록은 4ㆍ27 남북 정상회담 때 단 1건이다. 당시 조선중앙통신이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하신 후 평양으로 돌아오시게 된다”는 일정을 공개했다가 기사를 삭제하고 다시 올리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처럼 김 위원장의 동선은 북한 내 ‘최고 비밀’로 통한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의해 일정이 전세계에 사전 공개됐다. 또 하루 이상 평양을 비울 수도 있는 김 위원장은 집권 후 처음으로 각종 돌발변수를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다. 대북 소식통은 “아직 조직화되지는 않았지만 김정일 정권에 비해 낮아진 군의 위상에 불만을 가지거나 비핵화에 반대하는 강경파 세력이 군부 내에 있는 만큼 김 위원장이 공개적으로 평양을 비우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로선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또는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이 평양에 남아 내부 상황을 관리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9일 북중 정상회담 때는 최룡해 부위원장이 평양에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에 남는 인사가 김 위원장의 신임을 받는 명실상부 ‘권력서열 2위’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번 김 위원장의 공개 외유는 북한 내부 권력구도를 보여주는 지형도가 될 전망이다.
박재현 기자 remak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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