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 대해 일부 시청자들이 뿔났다. "속 터지는 고구마 전개"라며 답답함을 토로한다. 갑자기 극 전개에 문제가 생긴 걸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이 작품은 비현실적 막장극이나 신데렐라 탄생기를 그리지 않아 공감대를 형성했다. 남자친구가 어린 여자와 바람 피운 사실을 알게 되고, 어줍잖은 상사의 성희롱식 농담을 견뎌내고, 구두에 지친 발을 위해 운동화 한 켤레를 가방에 넣고 다니는 윤진아(손예진)는 30대 직장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 캐릭터였다.
그런 윤진아에게 어릴 적부터 보아온 친구의 동생 서준희(정해인)가 나타난다. 어리고 잘생긴데다 매너와 센스까지 겸비한 이 남자가 사랑의 상실감에 힘들어하는 윤진아를 감싸주는 모습에서 여성시청자들은 대리만족과 설렘을 느꼈다. '왜 내 주위엔 저런 남자가 없을까' 하는 한탄을 하게 만드는, 가히 완벽한 남자주인공의 등장이었다.
두 사람은 어렵게 사랑을 확인했다. 그러나 향기나는 연애 앞에 반드시 꽃길이 펼쳐지는 건 아니었다. 윤진아의 절친 서경선(장소연)이 애지중지하는 동생이란 점도 큰 장애물이었고, 남매의 밝은 모습 뒤에 감춰진 어두운 가정사도 걸림돌이 됐다. 명문대 출신 변호사 사위를 볼 기대에 가득 차 있던 윤진아 엄마 김미연(길해연)의 눈에 안 차는 건 당연지사. 그의 속물 같은 막말 퍼레이드가 펼쳐지면서 윤진아의 시름은 더욱 깊어졌다.
서준희는 윤진아와의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강경하게 막아서는 김미연 역시 호락호락한 인물은 아니었다. 안방극장의 공분을 살 정도로 길해연은 몰입도 높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주변을 돌아보면 그녀와 흡사한 사상을 갖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비슷한 언행을 보여주는 엄마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내 자식을 더 좋은 상대에게 시집(장가)보내고 싶은 욕심, 결혼을 인생 최고의 '기회'처럼 생각하는 엄마들을 적극 참고해 탄생시킨 캐릭터임에 분명하다.
윤진아의 괴로움은 서준희를 향한 이별 통보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감정적 혼선과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이 한데 엉키며 드라마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다시 굳건해진 사랑을 확인한 윤진아와 서준희가 어떤 결과를 보여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해피엔딩에 대한 바람이 얼마나 반영될지 모르지만, 설령 아프게 끝나더라도 '예쁜 누나'를 비난하는 건 섣부르다.
안판석 감독은 현실 속 30대 여성들을 적극 참고해 연출에 힘을 쏟았다. 윤진아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과 세밀한 인터뷰를 진행해 30대 여성의 생활과 심리에 대한 포인트를 잡아냈다. 이렇다 할 특별한 일상이나 기적적인 일들이 그려지진 않아도 충분한 즐거움을 준 건 바로 ‘공감대’ 때문이었다. 안 감독은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윤진아이고, 윤진아의 성장기를 담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미덕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여자 주인공의 성장과 섬세한 감정선을 다룬다는 점이었다. 윤진아는 ‘나이는 먹었지만 정신적으론 미성숙한’ 30대 여성이다. 시대가 변하면서, 결혼하지 않고 부모와 함께 살며 10대 때와 똑같은 과잉보호를 받고 지내는 여성들이 제법 많다. 주변의 30대 여성들 중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남자친구와 헤어짐을 선택하는 경우도 종종 봤다.
엄마에게 휘둘리는 윤진아의 모습이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으나, "30대 중반이면 애가 둘은 있어야 할 나이"라는 지적이 오히려 더 올드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윤진아는 발전하고 있지 않은가! 부모에 맞서기 시작하고 자신의 인생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 역설적이지만, ‘고구마 전개’가 있었기에 윤진아의 성장이 더욱 극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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