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일 청우물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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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소기업으로 유명한 (주)청우물류는 지난해 12월 여성가족부가 선정한 일ㆍ가정양립 가족친화기업 우수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김천일(64) 청우물류 회장은 공무원보다 빨리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2000년에 토요휴무제를 도입했고 올해부터 금요일 순환 휴무제를 실시하고 있다. 복지에 앞장선다. 직원 생일은 물론이고 배우자의 생일도 챙긴다. 직영차량 운영부문에서 ‘소사장제’를 처음 도입해서 운전기사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의 여행 파트너는 항상 아내이다. 최근 몇 년간 회사 일이 바빠서 하지 못했던 여행을 올해 초 큰마음 먹고 다녀왔다. 평소 회사일 때문에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20여 일간 남미여행이었다. 눈으로 가슴으로 담아온 남미 풍경은 그의 인생에 또 하나의 새로운 지식으로 남았다고 한다. 인생에서 여행은 새로운 학문을 담는 가장 쉽고 즐거운 방법이라고 그는 말한다.
“긴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평소 꿈도 못 꾼 긴 여행이었지요. 지금까지 회사를 위해 기계적인 삶, 규칙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는 가족을 위해 살 때란 생각이 듭니다. 마음을 조금 내려놓으니 시간적인 여유도 있고 편안합니다.”
아내 김숭열씨는 서슴없이 “100점짜리 남편”이라고 말한다. 속 한번 썩인 적이 없다고 했다. 일과 가정에 충실하고 자기관리도 철저해서 30대 청년 못잖은 건강을 자랑한다면서 엄지를 치켜세웠다. 잘 빠진 몸매에 군살 한 점 없다. 주변에서는 패셔니스타로 통한다. 아내는 “자기관리 하나는 대한민국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들 것”이라고 자랑한다. 아내의 칭찬에 남편은 “모든 것이 아내 덕”이라고 공을 돌린다.
“내 생애 가장 잘 한 일은 집사람과 결혼한 일입니다. 집사람은 늘 칭찬하고 격려해줍니다. 참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저의 단점, 실수 등을 기분 나쁘지 않게 조언해줍니다. 저는 좋은 습관을 가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했고 많은 것을 고쳤습니다. 겸손과 경청을 습관화했고 ‘역지사지’ 자세를 배웠습니다. 죽을 때까지 집사람의 조언을 받아들이고 변화할 겁니다. 무엇보다 부부는 신뢰와 믿음이 바탕입니다. 집사람의 내조에 감사하며 요즘 젊은이들이 배워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마인드도 아내 덕이라고 했다. 아내 김 씨는 취미로 사진을 찍다가 사진놀이치료라는 분야를 개척했다. 벤처 기업이 아니라 벤처 예술인 셈이다. 김 회장도 아내를 닮았다. 2005년 경일대 강의시절부터 PPT로 강의를 했다. 모두가 칠판강의를 하던 시절이었다. 컴퓨터에 능숙한 아내의 도움을 받았다.
지금도 회사홍보물 및 모든 제안서는 아내의 손을 거쳐 완성된다. 김 회장의 외형과 내면을 완성시켜주는 숨은 공로자인 셈이다. 왜 사람 인(人)이 서로 기대고 있는지를 절감케 한다.
김천일 청우물류 회장은 봉사맨이다. ‘함께하는 마음재단’에 소속된 ‘당기나기’(당신이 기쁘니 나도 기쁩니다)단장으로 10년째 봉사 중이다. 매달 첫 번째 토요일은 달성공원에서, 셋째 금요일은 희망의 집(어르신무료급식소)에서 정기적으로 급식봉사를 한다. 매년 봄에는 버스 2대로 어르신봄놀이를 하고 가을에는 농촌일손돕기 등 여러 가지 행사에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사내 교육실에서는 벌써 몇 해째 ‘어르신 신바람 체조 노래교실’을 1주일에 1번씩 운영하고 있다. 회사주변은 열악한 환경으로 독거노인이 많다. 문화혜택이 부족한 탓에 소문이 나서 점점 인원이 늘어났다. 수용 불가 상태가 되었다. 작년 12월 북구청에 건의해서 2018년 복현주민센터 강의로 흡수되었다. 지금은 한글해독을 못하는 어르신들을 위한 ‘어르신 한글교실’을 운영 중이다.
2013년부터 (재)청송군인인재육성장학회에 장학기금 1,100만원을 기부하는 등 청송군청, 달서구청, 성주 참외작목반 장학금 후원, 물품 지급 등 봉사퍼레이드는 끝이 없다. 2015년에 500시간 봉사표창, 김숭열 대표는 달서구청장 봉사부문 표창을 받았다. 아내가 운영하는 대구사진영상연구원과 함께 한 봉사활동, 사회 지원도 셀 수 없을 정도다. 부부는 봉사도 일심동체다.
특히 김 회장의 고향 사랑은 유별나다. 김 회장은 산 좋고 물 좋은 청송군 부동면 출신이다. 재구 부동면 향우회장 3년, 재구 청송군 향우회장 2년 등 고향을 위한 후원을 아끼지 않는다. 매년 4월 청송에서 경로잔치를 한다. 벌써 12년째다.
“고향은 말 그대로 제 정신과 마음의 뿌리입니다. 봉사라기보다는 은혜를 갚는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겁니다.”
선친이 문집을 발행한 큰선비였다. 2녀4남중 막내로 태어나 귀하게 성장했다.
서당생활로 한문을 익혔고 초등학교 입학 전에 천자문을 뗐다. 최근 들어 10여년간 다시 붓글씨를 썼다. ‘대한민국서예대전’ 입선 2회(2014,15)를 했다. “붓만 잡으면 고향 생각이 나서 마음과 정신이 붓끝으로 몰린다”면서 “부모님과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문자향과 서권기로 드러난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늘 바쁘게 살았지만 선친을 본받아 배움의 끈도 놓지 않았다. 2000년(40대)에 경북대 행정대학원 석사 졸업 후 2010년 일본 큐슈국립대학에 진학했다. 당시 요미우리 신문에 기사가 나올 정도로 큰 이슈가 됐다. 총각 때 배운 일본어가 빛을 발했다. 1년간 연구생 과정을 거쳐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그는 지금도 1년에 책값이 100만 원 이상 나간다. 1년에 40여권 이상 읽는다. 읽은 책은 포스트잇을 붙여 꼼꼼하게 기록한다.
그는 ‘생애 두 번째로 잘 한 일’로 일본유학 때 아이들을 데리고 간 것을 꼽았다. 당시 초등학생, 중2였던 남매를 외국인학교에 입학시켰다. 강하게 키워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김 회장은 “근면 성실한 유학생활이 아이들 삶의 자양분이 되었다”면서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교육과 여행을 통한 산교육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살아있는 것에 감사의 기도를 합니다. 세면장에서 거울보고 웃는 연습을 합니다.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고 건강해서 감사합니다. 죽었을 때 후회 없이 살다갔노라고 평가 받도록 남은 삶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은주기자 tracy11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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