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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살해당한 뒤, 집으로 온 편지 일곱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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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살해당한 뒤, 집으로 온 편지 일곱 통

입력
2018.05.1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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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말뚝 좀 뽑아주세요!”

2007년 10월 24일, 심마니 홍모(47)씨 목소리에 잔뜩 화가 담겼다. 산삼을 캐러 이 산 저 산 누비는 게 일. 이날은 강원 화천군에 있는 한 야산을 올라가보겠다고 차를 몰고 왔는데, 산으로 가는 길 한복판에 말뚝이 떡 하니 박혀 있었다. 야산을 둘러싼 길 중간중간 띄엄띄엄 자리잡은 집들, 말뚝 박힌 길 끝에 최요순(가명·당시 77)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안 봐도 뻔하지.” 노파가 차 다니는 게 시끄럽다고 아예 말뚝을 박아 길을 막아버린 거라 여겼다.

차에서 내린 홍씨가 최 할머니 집으로 가다 대문 앞에서 멈춰 섰다. ‘남의 밥줄 끊을 일 있냐’ 한 바탕 쏘아주겠다는 생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렸다. “어라!”, “이게 뭔 일이래.” 현관문 안쪽 화단 위로 쓰러져 있는 노인이 보였다.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에 화단 바닥이 젖어 있었다. 딱 봐도, 굳이 다가가 손으로 맥을 짚어보지 않아도, 죽었다는 걸 금세 알 수 있었다.

최 할머니 집 부엌과 거실 곳곳에 피가 흩뿌려져 있었다. 싱크대 옆에선 모양이 일그러지고, 손잡이가 훼손된 프라이팬이 나뒹굴고 있었다. 핏자국(혈흔)은 거실에서 시작돼 할머니가 쓰러져 있던 화단 쪽까지 죽 이어져 있었다. 화단에서 피 묻은 돌멩이가 발견됐다. 폭행이 방에서 시작해, 프라이팬으로 보이는 둔기 타격이 가해진 부엌과 거실을 거쳐 화단에까지 계속됐다는 걸 혈흔은 말해주고 있었다. 성인 남성 주먹보다 조금 큰 피 묻은 돌멩이가 발견된 곳쯤에서 마침내 끝났을 거라는 것도 추정이 가능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정작 중요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싱크대 안에서 할머니와 범인이 함께 마셨을 것으로 보이는 커피잔과 커피믹스 봉지가 발견됐지만 피해자 지문만 채취됐다. 바닥에 흩뿌려진 혈흔도 모두 피해자 것이었다. 혹시나 범인 땀 등 분비물이 묻어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할머니 옷에서도 이렇다 할 단서는 없었다. 쓰러진 노파가 손에 쥐고 있던 모발 63수. 이 역시 본인 것이었다. “저항하는 도중에 범인 머리카락을 잡아챈 줄 알았는데, 폭행당하면서 고통에 머리를 감싸 쥐면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뽑았다는 말이겠죠.” 프라이팬에서도, 돌멩이에서도 범인이 누구인지 실마리가 될 만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수사는 당연히 제자리걸음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건 현장이 야산을 중심으로 자리잡은 대여섯 가구가 전부인 조그만 시골마을이라는 점도 수사가 지지부진한 이유 중 하나였다. “폐쇄회로(CC)TV가 사건 현장 주변으로 아예 설치돼 있지 않았어요.” 마을 주민 상대로 탐문을 해봤지만, 워낙 오가는 사람이 없는 탓에 목격자 한 명 찾을 수 없었다. “그날 낯선 사람 본 적 없어요?” 산 넘어 이웃마을까지 탐문 범위를 넓혀봤지만, 빈손으로 돌아오긴 마찬가지였다. 마을 인근에 군부대가 있어 혹시나 범인이 군부대 사람일 가능성도 제기됐지만, 사건 당일 집 근처에서 군인을 봤다는 사람은 없었다. 전기검침원과 우체국 집배원, 할머니와 사소한 마찰이 있었다는 동네 목사 등을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조사해 봤지만 모두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수사는 난항이었다. 시간만 야속히 지날 뿐, 미궁을 벗어날 길은 보이지 않았다.

‘화천 할머니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이만성’이 보낸 편지. 경찰은 편지봉투 우표에 묻은 침에서 범인 DNA를 확보했다. 사진=연합뉴스
‘화천 할머니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이만성’이 보낸 편지. 경찰은 편지봉투 우표에 묻은 침에서 범인 DNA를 확보했다. 사진=연합뉴스

돌파구는 생각지 않던 곳에 있었다. 사건 발생 열흘 정도가 지난 11월 초, 숨진 최 할머니 집으로 편지 한 통이 배달됐다. 보낸 곳은 강원 화천군, 발신인은 이만성이었다. 수신인은 강진규(가명·당시 59), 숨진 최 할머니 큰 아들이었다. 목사로 일하던 강씨는 최 할머니와 떨어져 멀리 경기도에 살고 있었다.

편지에는 최 할머니를 성적으로 모욕하는, 구체적인 말들이 적혀 있었다. 물론 근거 없는 비하가 가득했다. 아들 강씨를 욕하는 표현도 많았다. 편지는 한 통에 그치지 않았다. 짧게는 두 달, 길게는 1년5개월 간격으로 2011년 1월까지 계속 이어졌다. 편지가 도착하는 족족 우체국은 수사를 맡고 있던 강원경찰청에 보고했다.

첫 단서는 2008년 보낸 세 번째 편지에서 나왔다. 편지를 분석하면서 범인으로 추정되는 이의 DNA를 채취한 것이다. 우표 가장자리에서 나왔는데 우표를 붙이려고 타액(침)을 사용한 듯했다. 물론 그것만으로 DNA 주인이 누군지, 용의자를 특정할 수는 없었다. 수사가 한 걸음 더 진행됐다는데 수사팀은 의미를 뒀다. 그렇게 또 시간은 흘러갔다.

2011년 11월 강원경찰청에 ‘미해결사건 전담팀(미제 전담팀)’이 꾸려졌다. 사건 발생 4년 정도 지난 시점, 미제 전담팀은 최 할머니 살해 사건을 가장 먼저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할머니 지인, 인근 주민 탐문수사를 재개했고, 2,7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수사기록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임형찬(현 홍천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장) 당시 팀장이 말했다. “우리 팀이 해야 할 일은 명확했어요. 좌고우면할 일이 없었죠.” 살해 용의자로 보이는 사람을 찾은 뒤 DNA를 채취하는 것, 그래서 채취한 DNA가 ‘화천에서 이만성이 보낸 편지 우표’에서 나온 DNA와 같은지 대조하는 게 수사의 전부였다.

임 팀장 등은 편지에 적힌 군대 용어에 먼저 주목했다. 군바리(군인), 연대 뒤 골짝(골짜기) 등등 편지에는 군인들이 사용하는, 군 관련 은어들이 유난히 많았다. 게다가 편지 수신인인 할머니 큰 아들 강씨는 근처 부대에서 연대장까지 지낸 인물이었다. 임 팀장은 강씨를 찾아갔다.

“보시다시피 편지는 아드님에 대한 내용입니다. 할머니 문제가 아닙니다. 아드님께서 해결하셔야 합니다.” 임 팀장은 강씨 코 앞에 편지를 들이밀었다. 강씨 얼굴에는 싫은 티가 역력했다. 살해 피해자 아들을 4년 만에 찾아가, 살인 사건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해야 하는 임 팀장도 곤혹스럽긴 매한가지였다.

“군대 계실 때 아드님께 원한 가졌을 만한 사람, 죄다 말해보세요.” 임 팀장은 멈추지 않았다. “글쎄요.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강씨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인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인지 임 팀장 속은 타 들어갔다. 계속된 추궁에 세 사람 이름이 언급됐지만, 조사 결과 허탕이었다. “아직 말씀하시지 않은 사람이 있을 겁니다.” 경기도까지 강씨를 세 번째로 찾아간 날, 마침내 강씨가 입을 열었다. “그게, 사실은 말입니다…”

조모(당시 64)씨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20여년 전 강씨가 연대장으로 있던 부대에 복무하던 인물이었다. 현재 거주지도 강원 춘천시 후평동. ‘이만성’이 보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편지에는 그곳 우체국 소인이 찍혀있었다. “함께 부대에 있을 때 둘 사이에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얘기도 나왔죠. 조금씩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조씨 DNA 채취해, 확보해둔 편지 DNA와 맞춰보면 모든 게 끝이었다.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바로 잠복에 들어갔다. 직접 조씨를 만나 DNA 채취를 요구했다가는 유력 용의자가 달아날 수도 있었다. 일주일 후, 마을 노인정에서 나오던 조씨가 소복이 쌓인 눈 위에 올려놓고 간 사이다 캔을 확보했다. 편지 우표와 마찬가지로 타액에서 DNA를 채취했다. 2012년 2월, 사건 발생 4년 4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DNA는 일치했다. 같은 달 16일 아침 춘천시 자택에서 조씨가 체포됐다. 조씨는 경찰서에서 진술을 거부했다. 경찰 추궁에 거품을 물며 부인하고, 간혹 조사 탁자 밑으로 숨기도 했다. 경찰이 제시한 DNA 분석 결과 앞에서도 그는 “할머니를 프라이팬으로 때리긴 했지만 죽이진 않았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경찰은 모든 조사를 마치고 조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 검찰로 사건을 넘겼다.

조씨가 이후 밝힌, 경찰과 검찰 조사에 따른 범행 동기는 1992년까지 거슬러간다. 숨진 할머니 큰 아들 강씨가 연대장(대령)으로 복무하던 때, 조씨는 연대 초입 검문소를 지키는 초소장(상사)이었다. 조씨는 당시 ‘융통성 없이 일하는’ 사람으로 부대 내에서 유명했다고 한다. 이런 성격 때문에 당시 연대 철창 안팎을 드나들며 공사를 하는 인부들과 잦은 실랑이를 벌였다. 매일 같이 오는 인부들에게 통행증을 요구했고, 인부들은 “왜 매번 보는데 통행증을 요구하냐”고 따졌다. 다툼이 잦자 강씨는 조씨를 연대 정훈반으로 문책성 인사 발령을 냈다.

조씨는 강하게 반발했다. 부당함을 주장하며 청와대와 국방부에 진정서를 냈다. 이 때문에 조씨는 추가로 징계를 받았고, 결국 이듬해 군을 떠나야 했다. 강씨는 조씨 제대를 만류하지 않았고, 제대식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고 한다.

조씨는 몇 년이 지나 화천군 산골짜기 부대를 다시 찾았다고 진술했다. 강씨를 만나 따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강씨는 이미 제대하고 없었다. 조씨는 군 복무 시절 알고 지내던 부대 인사들을 찾아 다니면서 그의 행방을 수소문했다. 누군가로부터 “(강씨) 어머니는 아직 연대 뒤 골짝에 산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사건 당일, 그렇게 할머니 집을 찾았다.

최씨 할머니를 해칠 생각은 없었다. 아들 밑에서 군 복무했다는 이가 찾아왔으니 최씨는 선뜻 문을 열어줬다. 밥도 차려주고, 후식으로 커피도 내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조씨가 “아들로부터 부당한 일을 당했다”며 강씨 험담을 하기 시작하면서다. “당신 큰 아들 지금 어디 있냐”고 따졌지만 답은 없었다. 오히려 “당장 나가라”는 질책만 돌아왔다. ‘연대장도 무시하더니, 그 어머니마저 날 무시하는구나’라는 생각에 주먹과 프라이팬을 휘둘러댔다. 맞아 쓰러진 할머니는 겨우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가는 조씨 허리춤에 매달렸다. 조씨는 본인에게 붙어있는 할머니를 출입구 밖 화단 근처에까지 끌고 나와, 머리를 돌로 내리쳤다.

조씨는 “강씨를 찾고,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최씨 할머니 댁으로 편지를 썼다고 진술했다. 뉴스를 통해 이미 최씨 사망 사실을 알고 있었던 그는 왼손으로 글씨를 쓰고, 일부러 맞춤법을 틀렸다. ‘이만성’도 조씨가 만든 가명이었다. 경찰은 조씨가 “본인이 죽인 할머니를 모함하기 위해” 할머니에 대한 험담을 쓰고, “본인이 저지른 사건에 대한 궁금증과 강박증을 해결하기 위해” 편지를 일곱 통이나 보냈다고 결론 내렸다.

조씨는 1심에서 징역 10년, 항소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 받은 뒤 2013년 3월 대법원에서 그대로 형이 확정됐다. 항소심은 조씨가 피해 망상, 현실판단력 장애 등 정신증세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 범행을 사전에 계획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 감형을 결정했다.

화천·홍천=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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