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개최 무산돼 아쉽지만
文정부, 이젠 길잡이 역할해야
평양서 싱가포르까지 4700㎞
中 다롄과 달리 거리 부담 클 듯
영구적 비핵화 둘러싼 승부
누가 ‘절대반지’ 차지할지 궁금
한국전쟁 휴전 이후 사상 처음으로 미국과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얼굴을 맞대는 초유의 담판이 성사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중국을 두 번이나 방문하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평양에 갔다 오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긴박한 외교전이 절정에 달한 모습이다. 회담 장소만 두고도 수많은 억측이 나왔고 관심포인트가 한둘이 아니다. ‘문재인-김정은’에 이어 ‘트럼프-김정은’의 회담은 어떤 장면을 만들어낼까. 지난달 27일 판문점 선언을 지켜봤던 남북 정상회담 취재팀이 북미회담을 짚어보기 위해 카톡방에 모였다.
광화문 불나방(불나방)=북미 정상회담 장소부터 몇 번의 반전이 있었죠. 판문점 개최가 현실화됐다면 ‘한반도 운전자론’측면에서 좋은 카드였는데.
판문점 메아리(메아리)=의제와 장소는 주고 받는 카드로 통합니다. 의제를 양보한 쪽이 유리한 장소를 정할 수 있다는 거죠. 싱가포르는 평양이나 판문점에 비하면 몰역사적이고 상징적 의미도 전혀 없어요.
삼각지 미식가(미식가)=북미 간 흥정의 결과로 친미도 친북도 아닌 곳입니다.
여당탐구생활(탐구생활)=판문점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에 관심이 갑니다. 트럼프 입장에선 남북 정상회담을 가진 장소이기도 하고 문재인 정부가 너무 돋보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었을 듯해요.
올해도 가을야구(가야)=북미가 정상회담으로 일거에 모든 문제를 매듭짓는 진정한 원샷게임을 원했다면 오히려 판문점을 선호했을 겁니다. 분단에 마침표를 찍는 상징성도 크고요. 하지만 비핵화가 단판에 끝내기엔 복잡한 사안이라 판문점을 배제하고 논의하다 싱가포르가 낙점된 것으로 보입니다.
불나방=어느 쪽이 장소의 기싸움에서 승리했다고 보나요.
가야=김정은을 싱가포르까지 끌어낸 건 미국의 승리입니다. 평양에서 싱가포르까지 직선으로 4,700km입니다. 고작 360km 떨어진 중국 다롄(大連)으로 날아갈 때와는 김정은이 느낄 부담감이 비교도 안 되죠. 국내에서도 비행기로 6시간 반이 걸리는 먼 곳입니다. 홈그라운드에선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데, 먼 곳까지 날아갈 수밖에 없는 김정은의 절박함이 읽히는 부분입니다. 문제는 전용기의 성능입니다. 북한은 경호 무방비인 상태로 최고존엄을 이역만리에 보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 군사전문가는 “북한이 중국에서 항공기를 임차해서 갈 것”이란 전망을 내놨어요. 트럼프 만나러 가면서 북중 밀월관계를 과시하는 것이죠.
불나방=폼페이오가 미국인 억류자 3명을 평양에서 데리고 나왔죠. 우리 국민 6명에 대한 송환요청도 남북 정상회담 때 했다는 사실을 청와대가 밝혔습니다. 우리 쪽은 왜 성과가 없을까요.
늑대와 왈츠를(늑대)=미국인은 풀려났는데 한국인은 소식조차 없는 건 부끄러운 일이죠. 남북 정상회담 이벤트는 성대하게 열어 줬는데 정당한 요구조건 하나 받아내지 못한 꼴입니다. 김정은도 말로만 남북관계 개선을 외칠 게 아니라 진정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메아리=억류자 석방도 협상카드 중 하나에요. 미국인을 풀어준 건 미국에 원하는 게 있거나 뭔가 보상을 받아내서겠죠.
미식가=남북 고위급회담 뒤 이어질 적십자회담을 통해 논의될 겁니다. 북한은 그간 이산가족상봉의 대가로 귀순한 중국 식당 종업원의 송환을 요구해왔어요. 억류자 석방 조건으로 비슷한 요구를 해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죠.
불나방=북미회담을 앞두고 김정은은 왜 중국에 다시 갔을까요, 2차 방중 장소로 왜 다롄을 택했을까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당나귀)=체제보장이란 측면에서 상징성이 적지 않다는 평가입니다. 다롄의 방추이다오(棒槌島)가 선대인 김일성ㆍ김정일이 덩샤오핑 등 중국 최고지도자와 비밀회담을 하던 곳이었던 만큼 같은 반열에 올랐음을 보여준다는 거죠. 중국이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 김정은의 이복 형 김정남이 은신하던 곳이기도 합니다. 북중관계가 틀어질 때마다 중국이 김정남과 같은 대리인을 내세워 북의 체제 전복을 시도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나오곤 했다는 걸 감안하면 의미심장한 대목입니다.
탐구생활=문재인-김정은 도보다리 회동과 김정은-시진핑 방추이다오 산책을 보는 순간 도보다리를 벤치마킹했음을 확신했습니다. 세계 정상회담에 산책회담이 유행이 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어요.
가야=도보다리는 마치 장학사(문재인)가 문제 학생(김정은) 데리고 다니며 설득하고 가르치고 어떻게든 공감대를 넓히는 장면이었다면 방추이다오 산책은 맨날 사고치는 집안의 막내(김정은)가 큰형(시진핑)을 찾아가 넓은 품에 안기는 것으로 비쳐졌습니다. 남이 잘해줘도 좋든 싫든 가족이 더 가까운 관계 아닐까요.
불나방=김정은의 행보가 놀랄 만큼 빨라요. 상황을 주도하는 운전자로 손색이 없는 분위기인데.
늑대=문 대통령이 ‘디테일의 악마’라며 스스로 우려했었는데, 판문점 선언에 3자(남북미) 또는 4자(남북미중)라고 적시한 것이야 말로 경계했어야 할 디테일의 악마였던 듯합니다. 남북 정상회담 국면에서 그렇지 않아도 소외감을 느끼고 있을 중국을 자극한 것이니까요. 그 결과 북중밀월이 한두 달 사이 뚜렷해졌어요. 한반도 유일 운전자였던 문 대통령의 역할도 시진핑으로, 김정은으로, 트럼프로 분산돼 가지 않을까요.
탐구생활=남북대결 국면이 풀린 결정적인 단초가 문 대통령이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일관되게 유지해온 전쟁불가 메시지와 북에 우호적인 태도가 김정은의 결단에 영향을 줬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마음은 콩밭에(콩밭)=북미가 대화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사명을 다한듯합니다. 문 정부도 이후 ‘중재자’ ‘운전자’란 표현보다 ‘길잡이’를 사용하고 있지요. 일단 차에 손님 두 명을 태웠으니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어요.
불나방=미국이 강조하는 영구적(Permanent) 비핵화가 최대 관심 키워드로 부각됐어요. 완전한(Complete) 비핵화를 강조한 우리 정부는 머쓱해졌는데.
당나귀=‘프레임 전쟁’ 측면에서 ‘신의 한 수’란 얘기도 있더군요.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와 관련한 논점이 P와 C의 문제로 집중되면 ‘코끼리’는 잊을 수 있다는 거죠. 즉 V(Verifiableㆍ검증가능한)를 두고 불필요한 논쟁을 이어가는 소모전은 피하게 됐다는 겁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의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 특사의 말마따나 이제는 솔직해져야 할 시점인 거 같습니다. 핵무기는 작고 북한은 너무 커서 CVID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니까요.
콩밭=영구적이란 표현으로 굳이 바꿔 쓴 것은 완전한 비핵화가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하자는 취지가 아니었을까요.
불나방=트럼프-김정은의 만남, 어떤 말이나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광화문 문지기=트럼프라는 사회자와 김정은이란 출연자가 만나서 만담을 나누고, 극적 장면을 연출해 카타르시스를 주는 버라이어티쇼.
미식가=문재인-김정은 회담이 떨어졌던 핏줄을 찾아가는 가족드라마였다면 트럼프-김정은 회담은 사루만과 호빗이 절대반지를 두고 겨루는 블록버스터 SF 그림입니다. 반지가 누구에게 갈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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