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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분쟁지역] 미국의 드론 작전, 정보공개도 불투명… ‘21세기의 비밀 전쟁’

입력
2018.05.11 19: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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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13일 예멘 수도 사나 시내에서 한 남성이 미군의 드론(무인기) 공습을 규탄하는 그라피티(길거리 벽화)가 그려진 장벽 옆을 지나가고 있다. 벽 중앙의 “당신은 왜 우리 가족을 죽였습니까?”라는 영문 글귀에서 군인뿐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의 생명까지 앗아간 드론 공격에 대한 예멘인들의 분노가 그대로 느껴진다. 현재까지 예멘에서 드론 공격으로 숨진 희생자는 77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나=로이터 연합뉴스
2014년 11월13일 예멘 수도 사나 시내에서 한 남성이 미군의 드론(무인기) 공습을 규탄하는 그라피티(길거리 벽화)가 그려진 장벽 옆을 지나가고 있다. 벽 중앙의 “당신은 왜 우리 가족을 죽였습니까?”라는 영문 글귀에서 군인뿐 아니라 수많은 민간인의 생명까지 앗아간 드론 공격에 대한 예멘인들의 분노가 그대로 느껴진다. 현재까지 예멘에서 드론 공격으로 숨진 희생자는 77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나=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지난해 수행된 ‘드론 공격(Drone Strikesㆍ무인기를 이용한 공습)’에 대한 정보공개 의무를 결국 이행하지 않았다. 2016년 7월1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 13732호 3장에 따르면, 국가정보국장은 전년도에 ‘적극적 적대 바깥 지역(Outside Areas of Active Hostilitiesㆍ이하 비적대지역)’에서 감행한 드론 공격 정보를 매년 5월1일 이전에 공개할 의무가 있다.

드론 공격은 엄연한 군사행동이다. 공격 지역의 구분은 공격의 정당성과 연계된다. 미국은 자국의 드론 공격이 가해진 국가들 중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시리아를 ‘적대지역’으로 분류해 놓았다. 예멘이나 소말리아, 파키스탄은 ‘비적대지역’이다. 후자 그룹에 대한 공격은 ‘비밀스런 전쟁’을 치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드론 공격의 은밀성은 최근 더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영국 런던시티대학 내 탐사보도국(BIJ)은 매월 이뤄지던 미국의 아프간 공습 관련 자료 제공이 지난해 말부터 뚝 끊겼다고 밝혔다. 미 의회 이니셔티브로 구성된 ‘아프간 재건 특수감찰기구’도 작년 10월 이후 드론 관련 정보를 받지 못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미 국방부 산하 중앙통제국 대변인은 올해 2월 “드론 관련 정보를 제공하지 말라는 충고를 들었다”고 말했다.

미군의 드론 공격은 2001년 아프간, 2002년 예멘에서 시작됐다. 드론이 수단이라면, 그 목적은 알카에다, 탈레반 등 테러리스트 집단원의 암살이다. 그러나 비적대지역에서 군사행동이나 적대적 행위에 동참하지 않은 개인을 타깃으로 하는 건 ‘초법적 사형(extrajudicial execution)’ 소지가 크다. 이는 전쟁 범죄에 준할 수도 있다. 적대지역에서의 공격이라 해도 민간인 살상이 발생하면 국제인도주의법 등 전쟁 관련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미 공군이 운용 중인 드론의 비행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미 공군이 운용 중인 드론의 비행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드론 공격에 따른 국제법 위반 사례는 차고 넘친다. 2012년 10월24일 파키스탄 북서부 북와지르스탄의 채소밭에서 일하던 주민 마마마 비비(당시 68세)가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게 대표적이다. 특히 구조를 위해 공격 현장에 간 이들을 노린 2차 공격, 이른바 ‘구조대 공격’도 반복됐다. 2012년 7월6일 북와지르스탄 조위 시지 마을에선 14세 소년을 포함한 일용직 노동자 18명이 1, 2차 드론 공격으로 목숨을 잃었다(1차 10명ㆍ2차 8명). 최근 잇따르고 있는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간 자폭테러에서도 구조나 취재를 위해 달려온 이들이 2차 공격으로 희생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는데, 미국의 드론 공격과 같은 수법이었던 셈이다.

미국의 드론 공격에 의한 최대 피해지인 파키스탄에선 첫 공격이 시작된 2004년 7월17일부터 지난해까지 최소 4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2월 BIJ의 발표를 보면 당시까지 오바마 행정부 6년간(2009~2014년), ‘비적대지역 은밀한 드론 공격’에 의한 사망자는 총 2,464명이었다. 이 가운데 민간인은 314명이나 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지난해 드론 공격이 낳은 민간인 희생은 전년 대비 215%나 증가했다.

이런 사망자 수치가 말해주듯 트럼프 정부 들어 드론 공격은 급증하는 추세다. 2017년 예멘, 소말리아에서의 드론 공격은 전년(오바마 정부 마지막 해)보다 3배 증가했다. 미 언론 데일리 비스트는 지난 7일 “미 국방부가 최근 드론 공격으로 제거했다는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의 대원들은 모두 민간인들이었다”고 희생자 가족과 친지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종전까진 국방부 산하 합동특수작전명령부와 미 중앙정보국(CIA)이 파트너십 형태로 작전을 수행했지만, 이제는 CIA 쪽으로 점점 주도권이 넘어가고 있다.

2017년 3월16일 미국 해군 드론이 시리아 알레포에 있는 이슬람 사원 공습 현장을 찍어 공개한 사진. 미 국방부는 당시 이 곳에서 알카에다 대원들의 회합이 있었다면서 ‘정당한 공격’이었음을 주장한 반면, 국제인권단체들은 “사원 내에 있던 민간인 다수가 사망했다”며 미군을 거세게 비판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2017년 3월16일 미국 해군 드론이 시리아 알레포에 있는 이슬람 사원 공습 현장을 찍어 공개한 사진. 미 국방부는 당시 이 곳에서 알카에다 대원들의 회합이 있었다면서 ‘정당한 공격’이었음을 주장한 반면, 국제인권단체들은 “사원 내에 있던 민간인 다수가 사망했다”며 미군을 거세게 비판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물론 전임 행정부들의 책임도 결코 가볍지 않다. 오바마 정부는 조지 W. 부시 행정부보다 10배 증가한 공격을 감행했다. 부시 정부가 암살 리스트에 따라 공격한 반면, 오바마 정부는 수상한 행위나 외양으로 공격 대상을 판단하는 이른바 ‘특징에 따른 공격(signatures strike)’을 감행했다. 이와 관련, 2015년 11월 20일 뉴욕에서 열린 전직 드론 파일럿들의 기자회견 내용은 충격적이다. 드론 작전 시 공격대상이 되는 어린이들은 ‘작은 사이즈의 테러리스트(fun-sized terrorists)’이며, 따라서 이들을 공격하는 건 “잡초가 성장하기 전에 정리해 주는 것”에 비유됐었다고 그들은 증언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정부는 최근 규제 완화로 미국산 드론 수출을 늘리겠다는 방침까지 언론에 흘리고 있다. 오바마 정부 말기에 강화됐던 수출 규제를 풀어 버리겠다는 것이다. 이에 국제인권단체들은 지난 3월9일 공동성명을 통해 ‘불법 살인’을 우려하며 규제 완화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엠네스티도 지난달 1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의 드론 공격에 정보 제공 형태로 협조해 온 영국과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도 인권 침해와 범죄의 공범”이라고 지적했다.

정보를 통제하고 최대한 은밀하게 치른다는 점에서 드론 공격은 베트남전 기간(1964~1973년) 동안 CIA가 수행한 ‘비밀전쟁’의 21세기 버전이라 할 만하다. 당시 미국은 9년 동안 중립국인 라오스에 8분에 한 번 꼴로 총 200만톤의 폭탄을 투하했다. 반세기 전과 오늘날의 차이라면, 통신수단 발달과 언론의 확장성으로 ‘제한적으로나마’ 일부 사실이 드러난다는 점, 그리고 작전 규모일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의 폐쇄성과 국제법 위반의 패턴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라오스에 대한 비밀전쟁이 ‘반공’의 이름으로 치러졌다면, 21세기 드론 전쟁은 ‘대테러전’이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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