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세상] 욕에 깃든 문화와 역사...'HOLY SHIT'
책을 만들면서 출판사가 검토한 제목은 ‘이런 젠장’ ‘이런 X발’이었다. 대체 무슨 책이기에. 영어 욕의 3,000년 역사를 추적한 ‘HOLY SHIT’이다. 번역하면 역시 ‘이런 젠장’. 고민 끝에 미국 원서 제목을 그대로 썼다. 저자 멀리사 모어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중세 르네상스 영문학을 전공한 ‘욕 전문가’다.
굳이 진지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한껏 진지해지는 사람에게 우리가 보이는 반응은 두 가지다. 존경 혹은 “피식” 하는 웃음. 이 책을 읽는 경험은 그 사이를 오간다. 자기가 아는 가장 센 욕을 남몰래 하고 위로 받은 적이 있다면 읽는 재미가 쏠쏠하겠다. 영어 욕과 한국 욕을 비교하는 즐거움도 간간하다. 야한 것, 지저분한 것에 결벽증이 있다면 거북함을 견뎌야 할 것이다.
세상이 험해져서 말이 거칠어졌고 거친 말로 세상이 더 험해진다는 걱정을 저자는 반박한다. 욕은 언제나 흥했다. 옛 유고슬라비아 철학자 올가 페나빈은 사회주의가 확산되면 욕이 멸종할 것이라 예견했다. 유토피아에선 욕도 쓸모 없어질 것이라면서. 그러나 현대 러시아어는 욕 투성이다. 우리는 욕과 더불어 산다.
언어는 뇌의 대뇌피질이 관장한다. 욕은 자율신경계를 다루는 변연계에서 작동한다. 욕을 기억하고 뱉는 게 본능적 행위라는 얘기다. 언어를 잃은 사람이 종종 욕은 할 수 있는 이유다.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유일하게 한 말은 ‘제기랄’이었다. 욕에 진통 효과가 있는 것도, 보통 말보다 욕이 뇌에 콕콕 박히는 것도, 모르는 언어의 욕을 귀신 같이 알아 듣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HOLY SHIT: 욕설, 악담, 상소리가 만들어낸 세계
멀리사 모어 지음∙서정아 옮김
글항아리 발행∙476쪽∙2만2,000원
시대와 말이 바뀌듯, 욕도 변한다. 중세시대엔 신을 언급하는 ‘성스러운’ 욕이 최악의 욕이었다. 현대엔 섹스, 배설을 소재로 한 ‘상스러운’ 욕이 아픈 욕이 됐다. 20세기에 벌어진 전쟁의 공포는 욕에 면죄부를 줬다. 전쟁 같은 삶을 사는 요즘 중고등학생이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것도 이해해 줘야 하지 않을까.
욕에도 금기가 있다. 금기를 정하는 기준은 그때그때 다르다. 1971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징병제 X까’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은 사람을 금고형에 처한 것이 부당하다고 결정했다. “외설죄에 해당하려면 명확한 에로틱함이 드러나 정신적 흥분을 유발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논리였다. 2009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X나게 멋진 상이네요”라고 기뻐한 그룹 유투의 리더 보노에게 연방대법원은 외설죄 유죄 결정을 내렸다. ‘X’가 남성 성기를 가리키는 같은 그 말이었지만 해석이 갈렸다. 요즘은 성 정체성, 인종, 외모 등을 차별하는 멸칭어가 금기다. ‘깜둥이’ ‘호모’를 입에 올리는 건 사회생활 포기 선언이다.
저자는 욕 예찬론자는 아니다. 그의 메시지는 이것이다. “상처 받은 이여, 욕이라도 하라. 단, 가려서, 알고 하라. 그러면 더 시원할지니.”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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