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2년 고려 고종때부터 재배
개성인들 정착하며 6년근 ‘뿌리’
1970년대 인지도 쌓으며 명성
값싼 외지산 유입에 고전
북미ㆍ중국산에 가격 경쟁력 밀려
선물 수요 줄고 중국 관광객 감소
인천시내에서 강화대교를 건너 차량으로 10분쯤 달리면 강화군청에 못 미쳐 왼쪽으로 강화인삼센터가 보인다. 강화도를 대표하는 전통시장인 강화풍물시장과도 가까워 강화인삼센터를 강화도 관광 마지막 코스로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
지난달 26일 오후 찾은 강화인삼센터. 강화도 고려산 진달래 축제가 나흘 전 막을 내려 많이 붐비지는 않았으나 관광버스와 승용차에서 내린 관광객들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센터 안으로 들어서면 박스 위로 수북이 쌓여있는 유백색과 붉은색, 흑갈색 수삼들이 가장 먼저 관광객들을 맞았다. 홍삼과 건삼, 홍삼 농축액, 홍삼 절편, 홍삼 젤리를 비롯해 황기, 하수오, 꿀 등도 시선을 끌었다.
이날 강화인삼센터에선 수삼이 품질과 크기 별로 750g에 2만5,000원에서 3만5,000원에 팔렸다. 박스를 사이에 놓고 상인들과 흥정을 벌인 끝에 수삼과 홍삼 젤리를 구입한 한 관광객은 “가족들과 함께 먹으려고 샀다”라며 “강화하면 인삼이 유명하고 다른 곳보다 (수삼이) 굵고 깨끗해 보여서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고 말했다.
강화인삼센터에서 20년 넘게 수삼 가게를 운영했다는 서미자(63)씨는 “국내 관광객보다는 외국인들 손이 큰 편이다”라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인들이 많이 찾았지만 최근에는 베트남 사람들이 많이 오고 있다”고 말했다.
800년 역사 강화인삼
인삼은 새우젓과 섬쌀, 순무 등과 함께 강화도를 대표하는 특산물이다. 강화인삼은 고려 고종 때(1232)부터 재배됐다고 한다. 강화도가 1920년 인삼 관련 특별구역으로 지정됐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10일 강화군 농업기술센터와 인천발전연구원에 따르면 고려인삼은 예부터 약효를 높이 평가 받았다. 한때는 불로장수 영약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최근까지 인삼 약리 효능에 관한 수많은 연구 논문들도 보고 되고 있다. 혈행 개선, 조혈작용 촉진, 혈전증 예방, 혈중 콜레스테롤 분해, 간세포 재생, 알코올 대사 촉진, 당뇨병 수반 증상 개선, 피부 노화 지연, 암세포 증식 억제, 항암제 부작용 감소, 기억력 증진 등에 크고 작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화도에서 인삼이 본격적으로 재배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다. 1953년부터는 활발하게 재배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개성에서 인삼을 키우다가 남쪽으로 피난을 온 개성인들이 인삼 재배지를 찾다가 기후와 토질 조건이 맞아 떨어진 강화도에 정착한 때다. 6년근 강화인삼의 효시다. 1970년에는 강화도 전체 밭 면적 10%에 이르는 400만㎡에서 인삼을 재배할 만큼 급속하게 성장했다.
옛 명성 되찾기 위한 노력
2013년부터 강화고려인삼축제
홍삼ㆍ젤리 등 다양한 형태로 가공
지난해 6만명 찾아 9억원 판매고
인삼은 재배 조건이 무척 까다롭다. 세계적으로 적지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몇 곳 없다고 한다. 강화도는 바다로 둘러싸여 해풍 영향을 많이 받는 기후이고 흙에 모래와 점토가 많이 섞여있어 인삼 재배에 유리한 것으로 평가된다.
천혜 조건에서 자란 강화인삼은 육질이 단단해 장기 보관에 유리하다. 홍삼 원료로도 국내 최고 품질을 자랑한다. 내공(홍삼 내부에 비어있는 부분)이나 내백(홍삼 내부 스펀지와 유사한 조직)이 적다. 홍삼은 최고급 천삼에 이어 지삼, 양삼 순으로 등급이 나뉘는데, 강화인삼으로 만든 홍삼은 천삼과 지삼 비율이 높다고 한다.
뿌리삼부터 농축액, 음료까지
강화인삼은 인삼 성분을 그대로 섭취할 수 있는 수삼과 5, 6년간 키운 수삼을 수증기로 찐 다음 건조시킨 홍삼, 수삼을 태양열에 건조한 피부백삼을 비롯해 홍삼 농축액, 홍삼차, 홍삼 절편, 홍삼 캔디, 홍삼 젤리 등 다양한 형태로 판매된다.
강화인삼농협에 따르면 지난해 뿌리삼과 농축액, 음료 등 형태로 팔린 강화인삼 전체 매출액은 95억8,200만원이다. 매출액은 2012년 70억4,000만원에서 2013년 79억5,200만원, 2014년 100억9,300만원으로 해마다 증가하다 2015년 98억2,900만원, 2016년 89억8,000만원으로 감소했으며 지난해 반등했다.
현재 강화인삼은 197개 농가에서 키우고 있다. 재배 면적은 84만4,792㎡다. 지난 2006년 82만6,446㎡에 비해 소폭 늘었으나 재배 농가는 당시(320개 농가)보다 크게 줄었다. 강화인삼 재배 면적은 1970년대 860만㎡(3,200개 농가)에 이르렀으나 점차 줄어들어 2001년에는 54만㎡(194농가)까지 축소됐다. 2002년부터 ‘강화 인삼 명성 찾기 운동’이 시작되면서 재배 면적과 농가 수가 일부분 회복됐다.
최정식(62) 강화인삼연구회 부회장은 “예전에는 인삼이 땅 한 칸(가로 180㎝, 세로 90㎝)에서 1.5~2㎏ 정도 생산됐는데 최근에는 기술이 좋아져서 3~4㎏씩 생산되고 있다”라며 “재배 면적은 과거에 미치지 못하지만 생산량은 늘어난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화인삼연구회는 고품질 인삼 생산을 위한 기술교육과 정보 교환, 각종 기자재 공동 구입, 선진 영농 현장 견학 등을 위해 20년 전부터 활동해온 단체다. 2006년 정식 출범했으며 현재 30대부터 80대까지 70여명이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옛 명성을 찾아라
강화인삼은 오랜 역사만큼 부침도 여러 차례 겪었다. 1970년대 빠른 성장을 겪으면서 명성과 인지도를 쌓았다. 그러나 같은 땅에서 연이어 재배하는 게 어려운 인삼과 섬이라는 특성상 인삼을 키울 땅을 확보하는 게 시간이 갈수록 어려웠다. 값싼 외지 삼 유입과 불투명한 유통 구조, 부족한 제품 개발 연구 등도 발목을 잡았다.
재배 기술 개발과 다양한 제품 출시로 고비를 넘겼으나 이후 북미와 중국산 인삼에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면서 고전했다. 젊은층이 인삼을 찾지 않아 고객층이 고령화되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에는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ㆍ사드) 여파로 한국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줄고,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선물용 수요도 줄어 어려움을 더하고 있다.
강화인삼센터 관계자는 “예전에는 중국인들이 선물하기 위해, 아니면 고향에 가져가 되팔기 위해 인삼을 많이 찾았지만 사드 이후에는 발길이 끊겼다”라며 “최근 들어 중국인 손님이 조금씩 늘고는 있지만 예전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2013년부터 시작된 강화고려인삼축제는 강화인삼을 알리고 판매를 늘리기 위한 방안으로 마련됐다. 6년근 인삼을 볼거리, 체험행사를 곁들여 저렴하게 판매하면서 인삼 재배 농가 등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축제가 됐다. 지난해 제5회 축제 때는 국내외 관광객 약 6만명이 행사장을 찾아 쌀, 고구마 등과 함께 9억원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
그러나 아직 옛 명성을 찾기에는 부족하다.
강화인삼연구회 최 부회장은 “사드 여파 등으로 수출 길이 막혀 현재 국내에만 홍삼 재고가 3조원어치나 쌓여 있는 것으로 듣고 있다”라며 “인삼을 직접 생산하지 않는 유럽과 북미에서, 인삼을 사다가 재가공해 비싼 값에 팔면서 우리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데, 우리도 정부와 기업, 대학에서 제품 연구 개발에 여력을 더 쏟아 농민들이 먹고 살기에 충분한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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