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근거도 갖추지 않았는데
정부, 무리하게 책임 떠넘겨” 지적
금융당국이 삼성생명을 향해 삼성전자를 비롯한 계열사 주식 처분을 독촉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 보유분을 전부 팔더라도 정부의 요구 수준을 충족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법적 근거를 갖추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에 무리하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0일 본보가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삼성생명의 총자산은 209조9,448억원(특별계정 48조1,684억원 제외)이다. 이는 삼성생명이 가입자 보험료 등을 운용하기 위해 매입한 주식 및 채권 가격을 모두 합친 것이다. 이 가운데 삼성생명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시장가격은 33조1,592억원으로, 총자산의 15.8% 수준이다.
보험사가 계열사 주식을 3% 넘게 보유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보험사 자산운용 비율을 단순 적용하면 삼성생명은 계열사 주식을 최대 6조2,983억원어치만 보유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 5배 수준을 보유할 수 있는 것은 현행 보험업법의 특이 규정과 관련 있다. 자산운용 비율을 계산할 때 시장가격으로만 계산하는 다른 업권과 달리, 보험업법은 분모값인 총자산은 시장가격, 분자값인 주식ㆍ채권 가격은 취득원가로 평가한다. 이에 따르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취득원가는 5조6,914억원이라 총자산의 2.7%에 그친다. 더구나 계열사 주가가 오르면 분모값은 커지는 반면 분자값은 그대로여서 '3%룰'을 충족하기 쉽다. 규제 효력이 거의 없는 셈이다.
2016년 이종걸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은 이런 제도상의 맹점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험업권 역시 자산 가치를 따질 때 시장가격으로 통일하자는 것이 골자다. 이 법안에 따르면 삼성생명은 시장가격으로 총자산의 3%(6조2,983억원)을 초과하는 지분(26조8,609억원)을 팔아야 한다. 그러나 이는 삼성생명이 주식을 가장 많이 보유한 계열사인 삼성전자 주식(26조1,427억원)을 모두 팔아도 충족할 수 없는 기준이다. 삼성생명으로선 삼성전자 주식 전량 외에 다른 계열사 주식(7,128억원)을 추가로 팔든지, 삼성중공업 등 다른 계열사 주식을 모두 팔고 삼성전자 주식 19조8,000억원어치를 파는 방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셈이다.
금융위는 이종걸 의원 발의 법안 통과를 전제로 삼성생명에 계열사 지분 정리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전날에도 삼성생명을 향해 “마냥 기다릴 순 없다”며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그러나 시장에선 아직 통과되지도 않은 법을 근거로 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배구조를 개선하되 기업의 성과를 유지 발전할 수 있게 정부가 정책을 펴야 하는데 지금은 정부가 형식 논리에만 매몰돼 있다”며 “과연 삼성전자 지분을 다 판다고 해서 생기는 경제적 실익이 있는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이런 비판을 의식한 듯 금융위는 삼성생명에 계열사 주식 처분 방안 마련을 압박하면서도, 강제 매각 조치를 위해선 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용진 의원 등이 자유한국당 등의 반대로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어려운 만큼 정부 소관인 보험업 감독규정을 먼저 고쳐 시행하자는 요구에도 소극적 자세다. 금융위 관계자는 “감독규정이 바뀐다고 해서 강제성이 생기는 것이 아닌 만큼 이는 입법으로 풀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