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이냐, 싱가포르냐 오락가락하던 북미 정상회담 장소 확정 문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트위터에 장소와 날짜를 밝히며 일단락됐다.
싱가포르 개최는 트럼프 대통령이 열흘 전 운을 뗐던 판문점 카드를 스스로 제외시키면서부터 일찌감치 예상됐다. 10일 트럼프가 트위터에 회담 장소와 날짜를 밝히기 전에도 미국 언론들은 싱가포르 개최를 기정사실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북미 정상회담 장소와 날짜를 확정했다고 밝히며 “DMZ는 아닐 것이다”고 판문점 카드를 제외시키자, 싱가포르에 무게가 실리는 모양새였다.
정상회담 날짜는 내달 8일부터 이틀간 캐나다에서 열리는 G7 정상회의를 감안해서 택일됐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에서 싱가포르로 곧바로 이동할 수도 있으나 워싱턴에 잠깐 머물렀다가 정상회담 장소로 향할 것으로 보인다.
싱가포르는 북미 공히 거부감이 없는 제3의 중립국으로, 양국 정상의 이동 거리 및 안전한 경호 인프라, 각종 국제대회 경험 등을 감안할 때 가장 무난한 회담 장소로 꼽혀 왔다. 2015년 역사상 첫 양안(중국과 대만) 정상회담이 열린 곳이라는 점도 장소 선택에 적지 않이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판문점에서 종전을 선언하는 등 상징성 있는 장면을 그려내지는 못하지만, 실무적 요소만 따지면 최적이란 평가다.
특히 지리적으로 미국과 북한 모두 접근하기 쉬운 게 강점이다. 항공기가 노후해 운항 거리에 제약이 큰 북한 입장에선 싱가포르가 중간 급유 없이 여유 있게 이동할 수 있는 한계에 가깝다. 또 미국과 북한 모두 대사관을 두고 있는 등 양국과의 관계도 원만하다. 동남아 지역을 관할하는 미군 주둔기지가 있고 과거에도 북미 접촉 창구로 활용돼 미국 관리들의 선호도가 크다. 북한 역시 고위급 간부들이 질병 치료를 위해 비밀리에 자주 찾았을 정도로 신뢰가 높은 곳이다.
일각에선 북한이 강력한 일당 지배 구조 하에 경제 발전을 일궈낸 싱가포르를 ‘롤 모델’로 삼고 있어 낙점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비핵화 이후 정상국가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기 위한 포석이다. 특히 북한을 벗어나 제3국까지 항공편으로 이동해 회동을 갖는 모습 자체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입장에선 글로벌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중국을 열차로 방문하며 외교 무대 데뷔식을 치른 뒤 지난달 27일 판문점에서 남북의 만남을 생방송으로 전 세계에 알리고 7~8일 항공기를 이용해 중국을 재차 방문하는 등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진화한 면모를 보여왔다.
한때 북미 정상회담의 평양 개최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벤트 정치에 능한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기회를 최대치로 활용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깜짝 발표를 통해 정상회담 홍보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평양 회담이 실현되면, 현직 미국 대통령 자격으로 최초 방문이란 역사적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기도 했기에 싱가포르 개최 발표 이전까지 평양 개최설이 꾸준히 흘러나왔다. 트럼프 대통령도 10일 북한에 장기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3명을 마중 나간 자리에서 북한 방문 용의를 묻는 질문에 “가능하다”고 밝히며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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