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자는 데뷔 28년차 베테랑 개그우먼이다. 오랜 시간 한 길을 꿋꿋이 걸어온 그는 독보적인 예능감과 친근한 매력을 자랑한다. 긴 세월 속에서 부침도 겪었지만, 최근 '전지적 참견 시점'을 통해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는 듯 했다. 그러나 이영자의 발목을 잡은 건 다름아닌 제작진이었다.
앞서 ‘전지적 참견 시점’은 지난 5일 방송에서 이영자가 어묵을 맛있게 먹는 장면을 뉴스 보도 형태로 편집하면서 세월호 참사 당시 특보 화면을 사용했다. 시청자들은 즉각 반발했고, 이영자 역시 깊은 충격에 빠져 녹화 불참 의사를 밝혔다.
실제로 후반 편집에서 생기는 일은 출연자들도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때때로 본 방송을 시청하면, 녹화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상황이 그려지기도 한다. 이 때문에 방송가엔 '악마의 편집'이라는 무서운 용어도 떠돈다.
MBC 측은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의 부적절한 세월호 관련 화면 사용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고, 진상조사위원회도 꾸렸다. 최승호 사장 역시 거듭 사과하면서 현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의 아픔은 말할 것도 없고, 이영자 또한 이번 사태의 큰 피해자라 볼 수 있다. 이영자는 ‘혀믈리에’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은 상태였다. ‘전지적 참견 시점’을 인기 프로그램으로 이끈 일등공신도 이영자다. 매니저 송성호 씨와 함께 출연해 '이웃집 언니' 같은 푸근한 매력을 보여준 그는 시청자들의 공감과 애정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전지적 참견 시점'은 연예인 매니저들의 제보로 스타의 일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관찰 예능이다. 그럼에도 매 방송 가장 화제가 된 것은 이영자의 '먹방'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어찌 보면 단순한 이치이지만 이영자의 차진 입담과 다채로운 표정이 곁들여지며 색다른 재미로 작용했다.
휴게소 음식부터 일상 속 사소한 음식들도 이영자를 거치면 품격(?)이 달라졌다. “음식은 세 번에 걸쳐 먹는다. 눈으로 먹고 코로 먹고 입으로 먹는다”는 명언을 남긴 이영자. 환상적인 먹방 덕분에 매출도 급증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하지만 그런 이영자가 난데없는 편집 논란에 휘말리게 되자, 안타까운 반응들이 이어졌다. 앞서 이영자는 1991년 MBC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데뷔, '여자 강호동'이라 불리며 거침 없는 매력을 뽐냈다. SBS ‘기쁜 우리 토요일’ 의 인기 코너 ‘영자의 전성시대’를 통해 당대 최고의 스타들과 호흡을 맞춘 이영자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카리스마와 자신감으로 독보적 개그우먼이 됐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다이어트 파문’ 이후 오랜 슬럼프를 겪었고, 2007년 tvN ‘택시’ MC로 합류할 때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럼에도 ‘택시’에 탑승하는 연예인들에게서 편안한 대화를 끌어내면서 진행자로서의 능력을 십분 인정 받았다.
이후 2010년 KBS2 ‘안녕하세요’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면서 이영자에 대한 호감은 더 높아졌다. 때로는 강하게 쓴 소리를 내뿜고, 때로는 상처 받은 출연자들을 진심으로 안아주면서 '영자언니'의 매력지수는 꾸준히 상승했다. 덕분에 8년째 '안녕하세요'의 안방마님으로 군림하고 있다.
본인보다 다른 스타나 출연자들이 돋보이게 이끌어주는 MC로 지내온 이영자는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주목 받으며 물 만난 고기처럼 뛰놀았다. 28년차 예능감은 쉽게 따라잡기 힘든 내공이라는 걸 증명한 그는 남녀노소 불문 시청자들에게서 역대급 호감을 이끌어냈다. 그렇게 '이영자의 전성시대'가 찾아오는 듯 했지만, 제작진의 과욕은 아픔만을 남겼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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