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 AS(애프터서비스) 기사도 좀 써야 하는 거 아닙니까?”
몇 개월 전 이승우(20) 이야기가 나오자 한 축구 에이전트가 말했다. 언론들은 몇 년 전 이승우를 ‘한국의 원더 보이’로 추어올리기 바빴다. 기사만 보면 그는 당장 바르셀로나A(1군)로 올라가 ‘한국의 리오넬 메시’ 가 될 것만 같았다. 이승우는 아쉽게도 바르셀로나A 입성에 실패한 채 지난 해 여름 이탈리아 세리에A(1부) 헬라스 베로나로 이적했다. 에이전트의 말은 장밋빛 전망 일색이었던 언론을 향한 뼈 있는 일침이었다.
이탈리아 무대도 벽이 높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난해 9월 라치오전에서 후반 26분 교체로 들어가 데뷔전을 치른 뒤 줄곧 교체로 투입됐다. 올 시즌 두 경기를 남긴 현재 선발 없이 교체만 13번이다. 이승우 에이전시인 박정선 팀트웰브 대표는 “이탈리아 리그가 생각 이상으로 보수적이다. 스무 살짜리 신인이 벤치에 앉아 템포를 눈으로 익히는 걸 당연한 거라고 한다. 또 베로나가 시즌 초반 워낙 고전해 신인에게 기회를 주기 힘든 분위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승우의 존재감은 한 동안 희미해졌다.
그러나 그는 역시 스타 기질을 지닌 선수였다. 이승우는 지난 6일 AC밀란을 상대로 이탈리아 리그 데뷔 골을 작렬했다. 팀은 1-4로 대패해 2부 강등이 확정됐지만 이승우의 득점 장면은 놀라웠다. 코너킥에서 튀어 나온 볼을 지체 없이 오른발 발리 슈팅으로 연결해 그물을 갈랐다.
그는 2014년 국내 축구계를 깜짝 놀라게 한 폭풍 같은 60m 드리블 골(U-16 아시아선수권 일본전), 지난 해 3월 감각적인 로빙 골(잠비아 평가전), 같은 해 5월 메시를 연상시키는 50여 m 드리블 골(U-20 월드컵 아르헨티나전) 등 늘 환상적인 득점으로 눈을 사로잡았다. 차범근(65) 전 국가대표 감독은 이승우를 보며 “그라운드에서 뭔가 한 건 해줄 것 같은 기대감을 팬들에게 심어주는 선수”라고 했는데 이번에도 어김 없이 ‘원더 골’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늘 자신감 넘치고 톡톡 튀는 이미지였던 이승우는 최근 부쩍 성숙해졌다고 한다. 경기에 못 나갈 때도 여론, 팬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고 1분이라도 주어질 출전 시간에 뭔가 보여주려고 운동에만 매달렸다. 얼마 전 직접 이탈리아로 가 이승우를 만나고 온 김학범(58) 아시안게임 대표팀 감독은 “철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물론 골 하나로 모든 게 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강등이 확정돼 남은 두 경기를 부담 없이 뛸 수 있다는 건 그에게 호재다. 이승우는 13일 우디네세(홈), 21일 유벤투스(원정)전을 잔뜩 벼르고 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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