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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 마음을 잘 전달해줘서 고마워요, 료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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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 마음을 잘 전달해줘서 고마워요, 료코상!”

입력
2018.05.09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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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일본 동경 자유극장에서 특별한 공연이 열렸다. 일본의 유명 뮤지컬 배우는 물론 중국 배우들까지 비행기를 타고 공연장을 찾았다. 특히 중국인들의 방문이 눈에 띄었다. 이 뮤지컬이 그리고 있는 인물은 한때 중국에서 ‘민족 반역자’로 처형을 당할 뻔한 사람이었다.

공연 자체로도 여러 의미가 있었다. 일단 연출을 맡은 아사리게이타 선생은 오랫동안 극단 사계의 대표를 맡았던 유력인사다. 주연 배우인 노무라 료코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27년 동안 주인공으로 열연했다. 연출자와 배우 모두 이번 공연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이 작품 제작에 참여하지 않는다. 이 작품이 다시 무대에 올려 진다면 새로운 연출자와 배우를 선정할 것이다.

이 뮤지컬은 이향란(1920~2014) 선생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선생은 중국에서 가수로 활동하다가 ‘민족 반역자’로 몰려 목숨을 잃을 뻔했지만, 재판 도중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구사일생으로 일본에 돌아왔다. 이후 일본에서 가수로, 또 뮤지컬 배우로 활약했다.

선생은 일본에 살면서 일본이 중국에 저지른 역사적 과오에 끊임없이 유감을 표명하고 사과하는 운동을 펼쳤다. 중국인들은 처음엔 선생의 진심을 의심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마음을 열었다. 이번 작품에도 그런 선생의 생전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 로비에서 한중일 삼국의 배우들이 만났다. 중국 배우 한 명은 료코상에게 “‘일본과 중국, 중국과 일본 두 나라를 사랑하자. 검은 머리, 검은 눈동자’라는 노래가 너무도 감동스럽게 다가왔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향란 선생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선생은 뮤지컬 초연을 지켜보았다. 극이 중국이나 일본,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 썼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자신의 진심이 그 오랜 세월에도 청청하게 살아남아서 중국인을 감동시켰다는 사실에 뿌듯해하면서 후배들에게 감사해하지 않을까.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을 잘 전달해줘서 고마워요, 료코상!”

예술의 힘이 이런 게 아닌가 싶었다. 한 인간의 진심이 이토록 생생하게 전해지기란 예술이 아니고선 불가능할 것이다. 일본에서, 그것도 그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뒤틀림도 없이 중국인들에게 그대로 전해질만큼 명징했다는 점이 놀랍다. 이날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이향란보다 더 이향란스러운 뮤지컬, 혹은 이향란의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진귀한 경험을 했다고 해도 될 듯하다.

이향란의 업적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이향란’이라고 답하고 싶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정치와 사상과 국경에 얽매여 살아간다. 많은 이들이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는다. 이향란 선생은 이런저런 이유로 가장 정치적인 삶을 살았지만, 살을 깎는 노력 끝에 자신에게 두텁게 덧씌워진 너울을 벗겨냈다. 인간 이향란의 진솔한 마음은 한때 자신을 원수로 여겼던 나라의 후손들을 감동시켰다! 예술가의 길은 곧 인간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확신을 또다시 얻는다. 감사합니다, 이향란 선배님!

홍본영 뮤지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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