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변지영의 내 인생의 히트곡
2011년 이탈리아 로마에 음악연수를 떠났다. 구미시립합창단 동료들과 함께였다.
15일 동안 강행군이 이어졌다. 자정이 넘어 잠들어 새벽 6시에 일어났다. 그 뒤로는 수업과 레슨의 연속이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한 음을 더 높이는 쾌거를 이루었다. 기압이 높아서 음이 잘 올라간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아무튼 성악가에겐 기적 같은 성과다. 고속도로처럼 뚫린 목소리로 아리아 ‘방금 그 노래 소리는’를 부르던 기억이 생생하다.
음악만큼 잊히지 않는 기억이 하나 있다. 골목 빵집에서 마신 에스프레소였다. 점심을 먹고 빵집 할아버지가 작은 잔에 내려주는 커피를 받아 마시면 온몸의 활력이 되살아났다. 한국에 가서도 커피 마니아로 살아가게 될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어?”
한국에 돌아와 에스프레소를 마셨을 때 고개를 갸우뚱했다. 맵고 쓰고 뻑뻑했다. 부드럽게 넘어가던 그 커피와 달랐다. 그 보름 사이에 이탈리아식 커피 맛에 길들여졌다고 할 수밖에 없다. 커피를 맛나게 마시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좁은 골목길에 있던 그 작은 빵 가게를 떠올린다.
바뀐 커피만큼이나 일상도 팍팍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누구에게나 음악만 생각하면 되는 시절은 짧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경제적인 부분까지 고려하면서 살아야 한다. 고단하고 지난하다. 무대에 설 때는 화려하지만 객석이 비고 나면 삶 자체가 밀물처럼 빠져 나가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음악이 있는 삶은 아름답다. 나는 음악가의 고단한 삶을 넌지시 안타까워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팍팍한 현실에 피곤할 때가 많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고, 다른 이들에게 감동까지 전할 수 있는 내 직업이 너무 좋다고.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지 못한다 할지라도 음악을 듣는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는 생각이다. 음악가 대부분이 이름도 없고 빛도 없이 음악의 길을 간다. 그럼에도 그들 한명 한명이 누구보다 훌륭하고 빛나는 삶이라고 믿는다. 평범하지만 특별했던 이탈리아 골목길의 에스프레소처럼.
<소프라노 변지영씨의 구술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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