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한달 만에 재방북
美 ICBMㆍ화학무기 의제 포함 원해
北도 단계적ㆍ동시적 비핵화 고수
비핵화 범위ㆍ조건 등 더 복잡해져
추가된 변수 입장 조율나선 듯
“북미 모두 판 깨기는 어려울 것”
지난 7, 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전격 회동, 중국을 지렛대로 미국과의 협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가운데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9일 다시 방북했다. 북미 정상회담 의제를 놓고 마지막 담판을 짓기 위한 수순으로 풀이된다. 비핵화의 범위ㆍ검증방법, 제재해제 시기와 조건 등을 어떻게 의제화할지를 놓고 북미가 최후 씨름을 벌인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북한의 양보를 최대한 끌어내려는 듯 발언 수위를 크게 높였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 합의 탈퇴 선언을 하는 자리에서 “이란 뿐 아니라 다가오는 김 위원장과의 회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미국이 불충분한 협상을 수용할 수 없다는 분명한 시그널을 북한에 전달하려는 것”이라고 압박했다. 그는 또 “우리가 요구하는 바는 북한이 1992년 남북한 비핵화 공동선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이는 핵 연료의 전면과 후면을 제거하는 것, 즉 우라늄 농축은 물론이고 플루토늄 재처리의 포기”라고 말했다. 우라늄 농축을 제한적으로 허용한 이란 핵 합의보다는 높은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은 비핵화 방법과 관련, 북한이 주장하는 ‘단계별ㆍ동시적 조치’에 대한 반대 입장도 분명히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평양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협상을) 세분화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국무부 고위 관계자도 “대통령은 담대한 행보를 하고 있는데 이는 실패한 과거 수십년간의 점증적ㆍ단계적ㆍ장기적ㆍ궁극적 군축과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일괄타결 방식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제재를 풀지 않겠다는 미국의 기존 입장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미국은 회담 의제에 비핵화뿐만 아니라 단ㆍ중거리 미사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및 생화학무기 문제도 포함시킬 조짐이다. 국무부 관계자는 “폼페이오 장관은 ‘열릴 수 있는 회담’(possible meeting)을 준비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 중”이라면서 “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 밝힌 대량생산 핵탄두와 운반체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핵무기에 대한 설명을 듣겠다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탄두(warheads)에 대한 설명”이라고 정정했다. 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모든 미사일의 폐기 혹은 통제를 의제화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이는 지난 4일 볼턴 보좌관은 일본 아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전보장국장과 만난 자리에서 “모든 핵무기, 탄도미사일, 생물ㆍ화학무기와 이에 관련된 프로그램을 포함한 북한 대량살상무기의 완전하고 영구적 폐기”라고 밝힌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에 맞서 북한은 단계적ㆍ동시적 비핵화 조건을 계속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월 베이징(北京)에 이어 다롄(大連)에서 열린 북중 정상회담에서 “북미 대화를 통해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유관 각국이 단계별로 동시적으로 조처를 하자”고 했다. 앞서 지난 6일 북한 외무성은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와의 문답에서도 “미국이 우리의 평화 애호적인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고 우리에 대한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회담 성사 조건을 높여가는 미국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아산정책연구원 최강 부원장은 “미국이 핵무기는 물론 화학무기까지 언급하는 등 추가 변수가 생긴 걸로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은 단계적ㆍ동시적 비핵화는 안된다는 미국 입장에 대한 북한의 답변을 확인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회담 무산 가능성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진행된 것으로 봐서는 미국과 북한 모두 판을 깨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판이 깨져도 북한에 책임을 돌릴 수 있는 미국과 달리 북한이 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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