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이란 핵협정(JCPOAㆍ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탈퇴를 공식 선언하면서 이란과 사업을 진행해 오던 다국적 기업들도 날벼락을 맞게 됐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정유기업을 비롯해 항공기 제조사, 금융권 등이 제재를 피하기 위해 이란 관련 사업을 줄여야 할 처지에 놓였다고 전했다.
당장 이란핵협정의 최대 수혜자로 꼽혀 왔던 보잉사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오랜 서방의 경제 제재로 여객기 노후화가 심각했던 이란은 2016년 12월 보잉과 사업 계약을 맺었다. 보잉은 이란 국영항공사인 이란항공에 80대 납품 계약을 했고 지난해 4월에는 아세만항공에 항공기 30대를 판매 계약을 맺었다. 총 200억달러(21조6,000억원) 규모다. 보잉의 라이벌인 유럽의 에어버스도 지난해 이란 에어투어항공, 자그로스항공과 100대의 항공기를 190억달러에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미국의 이란 핵협정 탈퇴로 보잉과 에어버스은 날벼락을 맞은 신세가 됐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이날 “이란에 상업용 비행기, 관련 부품ㆍ서비스를 수출할 수 있는 허가는 90일 뒤 취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어버스는 프랑스에 본사를 둔 유럽 기업이지만 미국산 부품이 사용돼 미국 제재의 영향을 받는다.
일찌감치 이 사태를 예견한 듯 글로벌 석유 메이저들은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미 투자한 지분을 이란 측 사업파트너에게 일부 넘기는 방식으로 제재 회피를 모색하고 있다. 네덜란드ㆍ영국 합작회사 로열더치셸이 대표 사례다. 이 회사는 2016년 12월 이란국영석유회사(NIOC)와 이란 남서부 야다바란 유전을 공동 개발하는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프랑스 에너지 기업 토탈이 투자하기로 결정한 이란 남부 파르스 지역의 가스전 개발 사업도 무산 위기에 놓였다. 토탈은 같은해 11월 토탈이 50.1%, 중국석유천연가스(CNCP)가 30%, NIOC의 자회사 페트로파르스가 19.9%를 나눠 갖기로 하고 20년에 걸쳐 가스전을 개발하기로 했다. WSJ은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토탈이 가스전 지분의 50.1%를 합작사인 CNCP에 넘겨주는 방식으로 이란에 잔류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WSJ는 트럼프 대통령이 고율 철강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힌 직후 ‘예외국 지정’ 카드를 활용한 사례를 들어 그가 이번 대이란 제재 재개를 벼랑 끝 전술로 활용해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고 지적했다. 실제 므누신 장관은 이날 “이란과의 거래를 ‘상당히’ 줄이는 국가에 대해서는 제재를 면제해 줄 수 있다”면서도 “‘상당히’라는 표현의 구체적인 기준은 밝히지 않았다. 따라서 WSJ는 이번 대이란 제재 재개가 긴장감만 고조시키고 외교관계와 제재 프로그램 전반을 흔들기만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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