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현재 합의 구조에선
이란 핵 폭탄 막을 수 없다”
이란 “다른 참여국과 합의 사수”
EU도 존속 지지 입장 밝혔지만
미 ‘세컨더리 보이콧’ 재개하면
유럽기업도 제재 받아 못 버틸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결국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이른바 이란 핵 합의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2015년 7월 협정에 공동 서명했던 이란과 유럽 동맹국ㆍ중국ㆍ러시아 등은 일제히 반발하며 합의를 존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JCPOA 구조에서 미국의 비중이 워낙 큰 만큼 실제 유지될지 여부는 미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란 핵 합의는 끔찍하고 일방적인 협상으로 애초 체결되지 말았어야 한다“며 탈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이란이 핵 프로그램에 대해 거짓말을 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면서 “현재 합의의 부패하고 형편 없는 구조 아래선 이란의 핵 폭탄을 막을 수 없다는 게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언으로 12일 만료되는 이란 핵 합의에 따른 미국의 대(對)이란 제재 유예 조치가 연장되지 않으면서 제재가 복원될 전망이다. 다만 이미 이란과 거래 중인 기업이 거래 정리를 할 수 있도록 제재 복원 전 3개월 또는 6개월의 유예 기간이 설정돼 있다. 3개월 유예 기간 뒤인 8월부터는 이란 정부의 미국 달러화 매입ㆍ취득, 이란으로의 여객기 수출 등이 제재 대상이 된다. 6개월 유예 기간 뒤인 11월부터는 이란으로부터의 원유 수입이 금지되며, 이란 중앙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과의 거래도 제재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전부터 이란 핵 합의가 잘못된 합의라는 입장을 시종일관 고수하며 합의 폐기 의사를 내비쳐 왔다. 미국 내에서는 합의의 주체였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존 케리 전 국무장관 등 민주당 정치인들이 반대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보리스 존슨 영국 외무장관 등이 방미해 설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돌리지 못했다.
합의에 참여한 이란과 다른 주체들은 잇달아 현재 조약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미국과 이란만의 양자관계가 아닌 다자간 합의이므로 나머지 국가들이 조약을 준수하면 합의를 존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탈퇴 선언 직후 이란 국영TV로 생중계된 연설에서 “핵 합의에 서명한 다른 강대국들은 아직 이 합의를 지키는 데 합의하고 있다”라며 합의를 사수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른 국가들도 이란의 입장을 지지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은 이날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의 결정에 유감을 표명한다”며 합의 잔류 입장을 밝혔고 유럽연합(EU)의 페데리카 모게리니 외교ㆍ안보 고위대표도 “이란이 합의 이행을 지속하는 한 EU도 핵 합의 이행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외교부는 “이란 핵 합의는 미국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국제사회의 자산”이라며 “대다수 국가에 반해 미국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중국 대표로 이란을 방문 중인 궁샤오성(宮小生) 중동문제 특사도 9일 기자회견을 열고 “핵 합의를 준수할 것”이라며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합의 주체 외 국가들도 이란 핵 합의의 존속을 지지했다. 일본의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장관은 “합의 유지를 위해 관계국과 협의하겠다”고 밝혔고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국제합의를 멋대로 취소할 순 없다”라며 미국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미국이 빠진 상태에서 핵 합의를 유지하는 데 유럽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세컨더리 보이콧’(제재 대상과 거래하는 제3자까지 제재)을 재개할 경우, 이란과 거래하는 유럽 기업들도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세계 기축 통화인 달러의 유통체계를 관리하는 초강대국 미국의 제재는 곧 국제사회의 공동제재나 마찬가지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편 핵 개발 중단의 반대급부로 얻은 경제 개방 효과가 기대 이하라고 판단한 이란이 급속히 핵무장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 이 경우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대 이란 견제 수준이 더욱 높아져 중동정세가 급박하게 전개될 것으로 우려된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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