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재난 등 이유로 자국 떠나
한국에 난민 신청 외국인 급증
‘최후 보루’ 행정소송서도 승소율 1%
법 사각지대에서 지원제도 마땅찮아
A씨는 에티오피아에 살던 2014년 독재정권 반대시위에 참가했다가 경찰에 체포돼 구금됐다. 시위 주동자가 아니었음에도 구금 후 전기선과 곤봉으로 매를 맞는 등 가혹행위를 당한 그는 석방 후에도 당국의 감시에 시달렸다. 공포에 휩싸인 A씨는 같은 해 한국으로 출국해 난민신청을 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법정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전쟁 재난 박해 등을 이유로 자국을 떠나 제3국으로 향하는 난민이 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난민신청이 쇄도하고 있지만, 이들을 품어줄 법적ㆍ제도적 절차가 미비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8일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난민신청자는 9,942명으로, 전년(7,541명)대비 31.8% 증가했다. 그러나 실제 난민이 되는 비율은 고작 2%에 불과하다. 1차 신청→이의신청→행정소송으로 이어지는 3단계를 다 합쳐도 저 정도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밝힌 세계 난민인정비율(37%ㆍ2016년)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난민신청자에게 마지막 보루인 행정소송 승소비율은 1%도 안 된다. 난민 관련 행정소송은 2014년 425건에서 2017년 3,143건으로 급증했는데, 이 중 원고승소 판결을 받은 건 매년 3~27건에 불과하다. 난민의 사회권을 보장하고 처우 개선을 위해 2013년 7월 난민법을 제정하고, 이로 인해 난민신청자가 급격히 늘어난 추세와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승소확률은 극히 낮은데, 사법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에 대한 지원제도는 마땅치 않다. 특히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한 문턱이 여전히 높다. 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본국으로 돌아갔을 시 ‘박해를 받게 될 것이란 충분히 근거 있는 공포’를 가져야 하며, 이는 신청자 본인이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쫓기듯 입국해 한국어에 서툰 난민들이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김세진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난민 대다수는 객관적 증거 제출이 어려움에도 법원은 물적 증거가 없으면 진술의 신빙성도 없는 것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단순 실수가 진술의 신빙성을 해쳐 패소에 이른 사례도 있다. 나이지리아에서 반정부단체 학생 리더로 활동했던 B씨는 정부 박해를 피해 2013년 입국 후 난민인정신청을 했지만, 입국 면접 당시 자신이 속한 단체의 약칭을 잘못 진술한 게 발목이 잡혀 행정소송 1심에서 패했다.
서울행정법원이 난민신청자들의 진술을 돕기 위해 2016년 7월부터 통ㆍ번역 사법지원센터를 설치해 자원봉사자를 통역에 활용하고 있지만, 이 역시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게 법조계 얘기다. 난민신청 사유의 절반가량이 종교 또는 정치적 문제인데, 통역인의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데다 전문성도 떨어져 진술을 믿고 맡기기 어렵다는 것이다.
비용 문제도 있다. 경제적 약자의 재판 받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법원이 소송구조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패소할 것이 명백한 경우가 아닌 때’라고 엄격히 적용을 제한하고 있어 실제 혜택을 받는 난민은 많지 않다. 서울행정법원 난민전담 재판부의 한 판사는 “난민 사건을 전문으로 할 수 있는 변호사가 많지 않은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혜영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난민 사건 전담변호사제도를 운영해 소송구조가 절실한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도움이 제공되게 해야 한다”라며 “교재와 매뉴얼 마련 등 난민 심사기법을 다양하게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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