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0여일 만에 중국을 다시 방문해 비핵화 의지를 재천명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 간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이라 방중 목적이 예사롭지 않다. 중국을 배경으로 미국을 견제하려는 포석으로 해석되나 혹 역사적인 북미 핵 담판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김 위원장은 7일부터 1박 2일의 방중 기간 중 다롄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은 북한의 확고한 입장”이라며 “유관 측이 대북 적대정책을 없애면 핵보유는 필요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이같은 입장은 남북정상회담에서 “앞으로 자주 만나 미국과 신뢰가 쌓이고 종전과 불가침을 약속하면 왜 우리가 핵을 가지고 어렵게 살겠느냐”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밝힌 비핵화 의지와 다르지 않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의 힘을 빌어 협상력을 높이려는 포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이 다소 무리한 요구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뜻대로 갈 수 없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하는 동시에 국면을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기싸움의 일환으로 보인다. 또 9일 도쿄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 직후 문 대통령이 가질 리커창 중국 총리와의 회담에서 비핵화 논의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는 여지도 남겼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 측간 난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시점을 감안할 때 김 위원장의 방중은 여러모로 심상치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회담 날짜와 장소 발표를 미루고 있고, 참모진은 생화학무기 폐기는 물론 ‘P(영구적인)VID’로 강도를 높인 비핵화 요구까지 들고 나온 상태다. 여기에 외무성이 맞대응 성격의 비판 성명을 내면서 북미 간 긴장감마저 감도는 형국이다. 이같은 북미 간 난기류를 감안하면 김 위원장 행보가 양측의 기싸움을 격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미중 무역갈등이 고조되고 있어 북중 밀월관계는 비핵화 구도를 ‘한미 대 북중’의 전통적 대결구조로 환원시킬 우려가 있다.
문 대통령은 9일 한중일 회담에 앞서 가진 일본 언론과 인터뷰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았고, 비핵화의 구체적 조치가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한 낙관은 금물”이라는 말로 엄중한 정세를 에둘러 표현했다. 북한과 미국이 적대해 온 세월을 감안하면 정상 간 담판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북미 양국 모두 불필요한 주도권 다툼으로 역사적인 비핵화 담판의 궤도를 이탈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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