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부당 대우 구제 돕기보다
“불리한 거 알죠?” 고소 취하 종용
직장갑질119에 제보 쏟아져
지난 2월 경기도 한 식품업체에서 50일째 일하던 A씨의 직장생활은 실제 근무시간보다 적게 기재된 근로계약서에 서명하라는 회사의 요구를 거부하면서 악몽으로 변했다. 관리자로부터 회유와 욕설을 듣고, 인근 주차장에서 멱살이 잡히는 폭행까지 당했다.
참다 못해 노동청에 고소했지만 A씨는 더 큰 충격에 빠졌다. 폭행 가해자인 관리자의 발언이 담긴 녹취록까지 제출했지만 담당 근로감독관으로부터 “(처벌하려면) 상처라도 입어야죠” “멱살 잡는 건 폭행 아니에요” “불리한 거 아시죠?”라는 냉정한 말이 돌아온 것. A씨는 “마치 가해자와 대화를 하는 것 같았다”며 답답해 했다.
직장 내 부당한 대우로부터 노동자를 구제해야 할 ‘노동경찰’ 근로감독관이 되레 사업주 편을 들거나 피해자들의 신고를 무력화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8일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취합된 근로감독관의 부당 업무처리 관련 제보가 100여건을 넘어섰으며, 제보자의 구체적 신원이 확인된 사안만 22건에 달했다고 밝혔다. 다수의 제보자들은 A씨 사례처럼 근로감독관들이 구체적인 조사에 착수조차 하지 않은 채 “문제 제기해 봐야 실익이 없다”는 투로 사실상 합의 또는 고소ㆍ진정 취하를 종용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수도권의 한 사회복지법인에서 일했던 B씨는 회사를 관둔 후에도 지급되지 않은 초과근무수당과 퇴직금을 받기 위해 지난해 10월 관할 노동청의 문을 두드렸다. B씨는 고소인 조사를 받으면서 담당 근로감독관으로부터 “내년 1월에 사업주와 대면 조사를 할 테니 받아야 할 돈을 정확히 계산해 오라”는 말을 듣고 기다렸지만 아무 소식이 없었다. B씨는 “2월에 노동청에 연락했더니 담당 근로감독관이 바뀌었고 사건은 각하 처리돼 종료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직장갑질 119의 박성우 노무사는 “감독관이 피해자에게만 입증 책임을 전가하거나 떼인 돈의 70~80%만 돌려 받은 채 합의를 보게 하는 등 부실하게 처리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지적했다. 박 노무사는 “감독관 1인당 80건 이상의 사건을 맡고 있어 처리 권고 시한(25일)을 지키는 경우도 거의 없다”며 “감독관 수를 대폭 증원하고, 외부인력을 활용한 명예 근로감독관 제도 도입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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