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가 올림픽 경기도 아니고...원래 남들과 경쟁하는 거 싫어합니다."
이창동 감독은 지난 2010년 '시'로 제63회 칸 국제영화제를 찾았을 당시 이 같은 심경을 밝힌 바 있다. '칸이 사랑하는 감독'. 한국 영화계에선 자랑이지만, 그에겐 이러한 수식어가 상당한 부담감으로 작용할 법하다.
실제로 이창동 감독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칸 경쟁부문에 오르는 데 대해 복잡한 마음이다. 꼭 시험을 치르는 기분인데, 사람들은 내 작품이 칸에 오는 게 마치 당연한 듯 여긴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 후 8년이 흘렀다. 신작 '버닝'을 내놓은 이창동 감독은 또다시 칸영화제의 부름을 받았다. 유아인, 스티븐 연, 전종서가 활약한 이 영화는 올해의 경쟁부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지난 2007년 제60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밀양', 2010년 제63회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시'에 이어 경쟁부문은 세 번째다.
신작 '버닝'은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를 만나고,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 받으면서 벌어지는 비밀스럽고도 강렬한 이야기를 그린다.
최근 공개된 예고편에서는 남다른 영상미와 함께 비밀을 잔뜩 품은 분위기가 여과 없이 드러나 본편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끌어올렸다.
'박하사탕' '오아시스' '밀양' '시' 등 지금껏 보여준 이창동 감독의 작품들은 가볍게 보고 지나칠만한 내용들을 다루지 않았다. 그만큼 그가 작품 한 편을 내놓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감독의 영화는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들을 반드시 쥐어주기 때문에 단순히 시각적 소비에서만 그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외신은 칸영화제가 이창동 감독을 사랑하는 이유로 ‘서사의 탄탄함’을 꼽는다. 고전적인 영화 문법에 충실하기 때문에 사랑 받는다는 설명이다. 이 감독의 영화들은 현란한 카메라 워크 등의 기교를 뽐내진 않지만 스토리텔링이 무척 탄탄하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8일 스타한국에 "이창동 감독은 독특한 캐릭터와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비일상적인 이야기 전개로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 회의와 성찰, 더불어 기대를 보여주는 흔치 않은 감독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특히 한국에선 홍상수 감독이 거듭되는 이중적 작태 속에 찌질한 본성을 드러내는데 집중한다면, 이창동 감독은 이해하지 못할 비일상적인 선택의 근저에 역사나 사회의 모순이 반영되는 이야기 전개를 한다"며 "홍상수 감독이 근원을 알 수 없는 부조리라면 이창동 감독은 명확한 원인이 있고 그 원인과 인물의 문제 사이에 설득력 있는 연관을 제시하기에 좀 더 보편적인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이창동 감독의 작품 가치에 대해 설명했다.
한편 제 71회 칸영화제는 8일부터 오는 19일까지 열리며, 전 세계 1906편의 영화가 상영될 예정이다. 심사위원장에는 호주 출신 여배우 케이트 블란쳇이 위촉됐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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