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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학대당한 동물도 누군가의 어미이고, 새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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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북스토리] 학대당한 동물도 누군가의 어미이고, 새끼다

입력
2018.05.0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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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당한 동물도 누군가의 어미이고, 새끼다. 픽사베이
학대당한 동물도 누군가의 어미이고, 새끼다. 픽사베이

“어머니, 학습지 좀 보고 가세요.”

전단지를 내미는 사람에게 “저 결혼 안 했어요”라고 톡 쏘던 때가 있었다. 그냥 안 받으면 될 걸 건넨 사람 무안하게 왜 그랬을까. 비혼인 나에게 ‘어머니’라는 단어는 낯설고 무거웠다. 그런데 요즘은 길고양이 밥을 챙기는 나에게 하는 “고양이엄마가 밥 챙기고 있네”라는 말이 싫지 않다. 오래 아이들을 돌보다 보니 ‘엄마’라는 단어의 무게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고양이 엄마가 사람 엄마보다 무게감이 덜 느껴져서는 아니다.

언젠가 지인이 반려견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ㅇㅇ아버님 진료실로 들어오세요.”라고 해서 “나는 개 아버님 아닌데, 마누라랑 딸이 키우는 개인데….” 중얼중얼했다고. 그러나 그 지인은 개가 나이 들고 병에 걸리자 내게 조언을 구하며 늙은 개를 돌봐야 함에 당황했고, 언제나 귀여운 모습으로 살아줄 것 같았던 개의 노화에 아파했다. 그런 지인을 보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겹쳤다. 영화 속 아버지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피가 섞이지 않은 아이도 똑같이 사랑할 수 있을까? 고레에다 감독이 들려주는 가족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나나 지인이나 영화 속 아버지처럼 엄마로, 아버지로 성장하고 있구나 싶었다.

종을 뛰어넘는 관계 멪음은 사랑을 배우는 좋은 방법이다. 픽사베이
종을 뛰어넘는 관계 멪음은 사랑을 배우는 좋은 방법이다. 픽사베이

기념할 날이 줄줄이 이어지는 가족의 달이다. 내가 반려동물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긴다고 하면 발끈하는 이들이 있다. ‘정상 가족’의 정의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각기 다른 나이, 생각, 젠더, 경제·신체적 능력을 가진 구성원이 모인 게 가족이라면 거기에 다른 종도 슬쩍 끼어들 수 있는 거 아닌가. 오히려 ‘모두 다 똑같은 가족의 모습을 갖자!’고 한다면 그게 폭력 같은데. 사랑이라는 게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를 존중하는 거라면 종을 뛰어넘는 동물과의 관계 맺음은 사랑을 배우는 좋은 방법이다. 특히 매일 얼굴 맞대고 살 부대끼며 사는 징글징글한 가족이라는 굴레 안에 종이 다른 구성원까지 받아들인다면 그게 진짜 가족사랑 아닌가.

언제부턴가 누군가 억울하게 당한 뉴스가 뜨면 ‘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이다, 누군가의 딸이다.’라며 호소한다. 피해자를 타자화하지 말자는 호소이다. 좋은 인식이다. 동물 문제도 마찬가지다. 길 잃은 개를 잡아먹거나 길고양이를 학대하는 사건은 누군가에게는 가족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다. 어제도 예능 프로그램에서 흰고래 벨루가 쇼를 보며 사람들이 환호했다. 벨루가는 평생 한 무리에서 생활한다. 쇼를 하는 벨루가는 포획 당시 대부분 그렇듯 젖도 못 뗀 상태에서 어미로부터, 가족으로부터 강제로 떼어 내졌을 것이다. 그런 불행을 가진 생명의 몸부림을 보면서 손뼉을 치며 환호하는 사람들. 몰랐다고 말하겠지만 그들은 벨루가 가족의 불행에 일조를 했다. 반려동물이든, 농장동물이든, 실험동물이든, 쇼 동물이든 동물을 생명이 아닌 상품으로 인식하는 자본주의 경제에 익숙해진 우리는 어떤 동물도 어미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잊고 산다.

얼마 전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라고 동네 이웃에게 한바탕 당했다. 그는 높은 담 위에서 팔짱을 끼고 서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큰 집과 넓은 마당을 갖고 있으면서 작은 생명 하나 담을 마음의 구석이 없었다. 자기 개가 고양이를 무서워한다고 했다. 반려동물과 산다고 모두 엄마가 되는 건 아닌가 보다. 진짜 엄마가 된다는 건 내 아이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아이가 배곯지 않고 안전하게 보호받았으면 하는 게 아닌가.

어떤 존재를 사랑하는 일은 모르는 인생을 사랑하는 일이다. 픽사베이
어떤 존재를 사랑하는 일은 모르는 인생을 사랑하는 일이다. 픽사베이

일본의 작가 하이타니 겐지로를 좋아한다. 그의 책을 읽으면 존경하는 스승에게서 좋은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외톨이 동물원>에는 사람들이 ‘정상’이라고 말하는 것에서 조금 벗어난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중 마리코는 보통 사람보다 열 배나 힘을 들여서 40분을 걸어도 겨우 200미터를 갈 수 있는 아이다. 그런 마리코에게 “마리코 힘내”, “수고가 많군”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저러다가 해 떨어지겠네”, “저런 애는 무슨 낙으로 살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나와 다른 모습의 존재를 보며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고 살았는지 곰곰 생각했다. 그리고 저자가 들려준 이 말을 마음에 새긴다.

‘너희가 모르는 곳에 갖가지 인생이 있다. 너희 인생이 둘도 없이 소중하듯 너희가 모르는 인생도 둘도 없이 소중하다. 사람을(나는 ’어떤 존재‘로 바꾸어서 읽는다) 사랑하는 일은 모르는 인생을 사랑하는 일이다.’

글ㆍ사진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외톨이 동물원>, 하이타니 겐지로, 비룡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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