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바의 기적’ 홍차옥이 본 단일팀
현정화-리분희-유순복과
결승 올랐지만 출전은 못해
당시 동료 3명 메달 못 받아
이번엔 모두 메달 받아 다행
단일팀이 中 꺾는 기적 봤지만
젊은 바친 선수 희생 없었으면
스웨덴 할름스타드 세계탁구선수권에서 전격적으로 결성된 남북 단일팀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1991년 일본 지바 세계선수권 단일팀을 떠올린다. 27년 전 ‘지바의 기적’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한 명 있다.
홍차옥(50). 홍차옥은 현정화(49ㆍ한국마사회 총감독)와 호흡을 맞춰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중국의 콧대를 꺾고 여자복식 금메달을 거머쥔 간판 선수였다. 이듬해 지바 세계선수권 때도 그는 현정화, 북한의 리분희, 유순복과 단일팀을 이뤄 중국의 9연패를 저지하며 감동의 우승을 차지했다.
홍차옥의 별명은 ‘철녀’였다. 체력이 좋고 성실해 태릉선수촌에서 불암산 장거리 달리기를 하면 도맡아 1등이었다. 이 때문에 애꿎게 핸드볼 선수들만 단체 기합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현 감독이 탁구 일선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것과 달리 홍차옥은 1994년 은퇴 후 평범하게 살았다. 집 근처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서 동호인들을 가르친 지 10년이 넘었고 서울대학교에서 탁구 강의도 맡고 있다.
그는 7일 한국일보와 통화에서 “27년 전 우리가 했던 것들이 기초가 돼 다시 만들어진 단일팀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고 밝혔다.
이번 단일팀은 급히 꾸려졌는데도 남북 선수들이 격의 없이 어울려 화제를 모았다. 홍차옥은 “예전에 북한 선수들 옆에는 늘 감시원이 있었고 남북 간에 긴장감이 돌았다. 얼마 전 남북 최고 지도자가 교감을 나눈 덕에 지금 선수들은 화기애애하게 지낼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가워했다.
단일팀이 논의될 때마다 선의의 피해를 보는 한국 선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논란이 불거진다. 평창동계올림픽 때 정부가 무리하게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밀어붙이다가 역풍을 맞기도 했다.
홍차옥은 지바 단일팀 우승의 주역인 동시에 당시 중국과 결승은 아예 뛰지 못한 아픔도 있다. 당시 남북은 국가대표 전원이 대회에 참가해 선수 피해를 최소화했지만 경기에 뛸 수 있는 선수는 한정돼 있었다. 단체전 엔트리는 4명이었고 4단식-1복식 방식이었다. 중국과 결승은 유순복(북)-현정화(남)-현정화ㆍ리분희(남북)-현정화-유순복의 순으로 나섰다. 홍차옥만 4명 중 유일하게 벤치를 지켰다.
단일팀이 아니었다면 그는 분명한 주전이었다. 또 단일팀이 구성됐어도 냉정히 실력대로 복식 조를 만들면 직전 해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현정화-홍차옥 조가 1순위였다. 그러나 복식은 무조건 남북을 합쳐야 한다는 원칙에 밀렸다. 27년이 지났지만 홍차옥은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듯했다.
그는 “태극마크를 달고 그 무대에 서기 위해 선수들은 젊음을 통째로 바친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때도 단일팀이 되면 분명 ‘대’를 위해 ‘소’가 희생해야 한다. 선수 입장에서는 가슴 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또한 현정화, 홍차옥 외에 출전 엔트리에 들지 못한 한국 여자 선수 3명은 메달도 못 받고 시상대에도 서지 못했다. 홍차옥은 “3명에게 너무 미안했다. 이번에 할름스타드에서 남북 9명 모두 동메달 받는 모습(남북과 국제탁구연맹 합의에 따라 선수 전원 메달 획득)이 보기 좋았다”며 “이제는 남북 인원을 동수로 한다는 등의 상징적인 원칙을 넘어 진짜 실력대로 단일팀을 만들어 세계의 벽을 넘어보는 것도 고민해 볼 때”라고 의견을 냈다.
그러면서도 홍차옥은 ‘단일팀’이 가진 힘과 상징성을 강조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는 “남북 사람들이 어울려 한반도기를 들고 응원하는 걸 보고 선수들도 엄청난 에너지를 받았다. 평소 순하기 그지 없던 유순복이 결승에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당대 최강자였던 덩야핑과 가오준을 이기는 걸 보고 소름이 돋았다. 이게 바로 단일팀만 만들 수 있는 기적 아니겠느냐”고 의미를 부여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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