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냉소 속 투표율 50% 미만
9년 만에 치러진 레바논 총선에서 이란과 시아파의 후원을 받는 무장단체 해즈볼라 세력이 약진할 것으로 보인다.
7일 AP, AFP 등 외신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총선 잠정 집계 결과 친(親) 이란 성향의 헤즈볼라와 연계 세력이 이끄는 정당이 전체 128석 중 최소 67석을 확보했다. 반면 사드 하리리 현 총리가 이끄는 친(親)사우디 성향 미래운동(FM)은 의석의 3분의 1을 잃는 등 크게 약화했다. 다만 FM이 1당 지위를 잃더라도 총리직은 수니파가 맡기로 한 현행법상 현 하리리 총리가 직을 유지할 전망이다. FM의 의석은 33석에서 21석으로 줄었다. FM과 함께 양대 세력을 이루는 미셸 아운 대통령이 속한 기독교계 마론파 자유애국운동(FPM) 역시 27석에서 6석 줄어든 21석을 얻은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반면 부정부패 척결을 내세운 기독교계 우파성향인 기독레바논당은 기존 의석보다 2배 가량 많은 15석을 차지하며 약진했다.
이번 총선은 지난해 6월 레바논의 각 정파가 선거법 개정에 합의하면서 치러졌다. 1990년 내전 종식 이후 레바논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의석을 균등 배정하고, 각 교파 별로 의석을 재배분하는 종파별 의석 쿼터제를 시행 중인데, 새 선거법은 그 골격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목소리를 듣겠다’며 승자독식제를 폐지하고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저조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잠정집계 결과 투표율은 49.2%에 불과했다. 2009년 총선의 55%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투표권을 포기한 것이다. 당초 2013년 계획됐던 총선이 시리아 내전에 따른 안보 위기 등을 이유로 5년이나 미뤄지다 실시됐는데도 뜻밖의 결과가 나온 셈이다. 사우디와 이란에 휘둘리며 민생을 등한시했던 정치 엘리트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유권자의 불신이 ‘투표율 저조’로 나타난 것이다. 외신들은 이에 대해 “유권자 사이에 회의론이 확산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만연한 부패와 경제위기 심화, 공공서비스 약화 등이 선거 쟁점이었지만, 시리아 내전과 미국의 이라크 개입,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 등 중동 지역 현안이 크게 대두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레바논인들은 총선 결과가 ‘지역 사안’에 좌우되는 기존 정치질서를 바꿀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물론 총선 결과가 레바논 앞날에 무의미한 건 아니다. 로이터 통신은 “헤즈볼라의 정치적 입지 확대는 레바논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을 강화시킬 것이며, 미국의 경계심도 일깨울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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