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간 법원공무원으로 일해온 박모씨는 2016년 7월 민사집행과 경매담당으로 발령을 받았다. 경매업무는 도움 없이 혼자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데다 금전을 다루는 일이라 그에 따르는 책임도 상당해, 기피 부서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그는 불안한 마음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고, 정신과에서 경도 우울증 진단을 받아 약을 복용했으나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결국 박씨는 인사 발령 12일 만에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방송사에서 23년간 기자로 근무한 전모씨는 2013년 갑자기 라디오 편성부 PD로 발령받았다. 입사 후 대부분의 기간을 기자로 근무한 전씨에게는 갑작스러운 인사였다. 하지만 적응할 틈도 없이 박씨는 출근과 퇴근 생방송 프로그램을 동시에 떠안았다. 매일 최소 1시간30분 이상 추가근무를 해야 했고,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러다 전씨는 사무실에서 업무를 준비하다 구토를 하며 기절했고,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공무원연금공단과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했던 두 사건이 법원에서 각각 공무상 재해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됐다. “보통 직장인 입장에서 볼 때 충분히 극복 가능한 사안”이라는 것이 공단의 입장이었으나, 법원은 업무와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면 죽은 이의 내성적 성격이나 지병이 죽음에 영향을 미쳤더라도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7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부장 함상훈)는 박씨에 대해 “공무상 스트레스로 우울증 등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박씨의 업무와 사망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또 “비록 죽은 이의 성격 등 개인적 취약성이 자살을 결의하게 된 데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고 해서 (이 판단을) 달리 볼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지병이 있었던 PD 전씨의 사례도 이와 비슷하다. 부검 결과 전씨는 뇌혈관 질병 또는 심장 질병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전씨는 이 질병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는 고지혈증을 앓았다.
이미 질병이 있던 상황임에도,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부장 박양준)는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질병을 자연적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시켜 전씨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것”으로 보고 전씨의 죽음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전씨의 근무시간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과로의 기준(발병 전 12주간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 이상 등)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예시규정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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