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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자 26% “정서ㆍ신체적 학대”
가해자 대부분 친구 등 주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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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탈시설’ 추진에
“학대 방지 대책 마련 시급” 지적
지적장애 3급인 김모(30대)씨는 10여년 전 남편을 만난 후 시설을 나와 가정을 꾸렸다. 자녀를 낳고 평범한 일상을 보낼 기대에 부풀었지만 꿈은 깨졌다. 남편은 별다른 이유 없이 김씨를 방에 가두고 외출을 하지 못하게 했고, 때론 폭행을 했다. 결국 김씨는 어린 자녀를 데리고 도피했다. 김씨는 “남편의 보복이 두려워 수사기관이나 장애인시설에 도움을 요청할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정신장애 3급인 박모(60대)씨는 스스로를 ‘동네북’이라고 말한다. 박씨의 지적 수준이 다소 낮다는 이유로 동네 사람들에게서 수시로 욕을 듣고 무시를 당하는 것은 물론, 따돌림을 당하기 때문이다. 한번은 박씨를 놀리던 동네 아이들이 물건을 던져 크게 다칠뻔한 적도 있다. 그러나 박씨는 장애인이라 어쩔 수 없다는 자책에 적극적으로 대응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집에 거주하는 재가(在家) 장애인들이 학대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가족이나 이웃으로부터 멸시당하거나 폭력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문재인 정부가 ‘탈(脫) 시설’을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장애인 학대 범죄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보건복지부의 연구용역을 받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실시한 ‘재가장애인 인권실태조사’에 따르면 재가장애인 4명 중 1명(25.8%ㆍ147명)은 최근 1년간 정서적ㆍ경제적ㆍ신체적ㆍ성적 학대나 유기ㆍ방임 중 1가지 유형 이상의 학대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2가지 유형의 학대를 중복 경험한 이들도 8.4%(48명)에 달했다. 지난해 9, 10월 수도권 거주 만 18세 이상 재가장애인 569명을 대상으로 면접 조사한 결과다.
재가장애인이 경험한 학대 피해는 총 223건(중복 포함)이었다. 이 중 박씨처럼 정서적 학대(52%ㆍ116건)를 겪은 비중이 가장 높았다. 이들은 “같은 건물에 사는 고시원 이웃이 때리겠다고 위협을 했다” “지하철에서 모르는 사람이 화난 표정으로 빨리 못 간다고 욕을 들어야 했다”고 했다. 김씨 사례처럼 신체적 학대로 이어진 경우가 15.7%로 뒤를 이었고, 경제적 학대(15.2%), 성적 학대(9.0%), 유기 및 방임(8.1%)의 순이었다.
재가장애인을 학대하는 가해자는 가족, 친구, 이웃, 그리고 시설종사자 등 그들의 주변에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정서적 학대는 친구ㆍ이웃(42.5%)으로부터 경험하는 비율이 높았고, 신체적 학대는 부모나 배우자 등 가족(37.1%)이 가해자인 비율이 높았다. 특히 성관계를 집요하게 요구받는 등 성적 학대를 받았다고 응답한 재가장애인의 37.5%는 가해자로 친구와 이웃을 지목했다.
하지만 피해자 절반 이상(59.2%ㆍ82명)은 “대응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신고해도 달라지지 않고(20.5%) 가해자가 가까운 사람이어서(15.8%), 혹은 보복이 두려워서(9.3%) 등의 이유를 들었다. 실제 정부 기관의 지원을 받은 학대 경험자는 전체의 22.5%(33명)에 불과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재가장애인을 위한 학대 의심사례 발굴 체계를 마련하고 학대신고 의무자도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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