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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병역거부 7년째 심리중… 법원, 판결 대기 90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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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병역거부 7년째 심리중… 법원, 판결 대기 900건

입력
2018.05.07 04:4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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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한 사유에 양심자유 포함 놓고

위헌법률심판 판단 최장기 지연

지난해 1, 2심서 무죄 45건 등

대법원 판례와 다른 판결 속출

법원 ‘헌재 결정 임박’ 판단 따라

반년 새 계류 건수 300건 늘어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2일 서울 이화여대 법학관에서 '헌법재판은 무엇을 추구하는가'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2일 서울 이화여대 법학관에서 '헌법재판은 무엇을 추구하는가'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5년 종교적인 이유로 병역 거부를 택한 김선권(32)씨는 같은 해 5월 1심 무죄, 6개월 뒤 2심 유죄를 선고 받았다. 곧바로 상고했지만 30개월 지나도록 대법원 확정 판결은 나오지 않고 있다. 사건 검색을 해보면 ‘관련 법리에 관해 심층 검토 중’이라고만 뜬다. 어느새 두 아이 아빠가 된 김씨는 “군 미필이라 직장생활을 안정적으로 하기 어렵고 수년째 해외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법원이 빨리 결정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종교적 신념 등에 따라 병역의무를 거부해 재판에 넘겨진 ‘양심적 병역 거부’ 사건 900건 가까이가 법원에서 판결 대기 중이라는 통계가 나왔다. 헌법재판소가 위헌법률심판 판단을 7년째 지연하면서 사법 사상 유례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6일 한 종교단체에 따르면 3월말 기준 병역 거부로 재판에 계류 중인 사건은 883건에 이른다. 대법원에서 187건이 심리 중이고, 2심에는 226건, 1심은 470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종교단체 관계자는 “매달 수십 건씩 늘고 있는데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비종교적 이유의 병역 거부 사건까지 합하면 900건이 훨씬 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계류 중인 사건이 늘면서 연간 600~800명에 이르던 병역 거부 수감자는 222명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법조계에서는 헌재 결정이 임박했다고 보는 법원이 최대한 판단을 늦추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계류 중인 사건 숫자는 반년 사이 300건 가까이 늘었다. 이른바 ‘하급심의 반란’이 계속되는 것도 부담이다. 대법원은 2004년 7월 전원합의체에서 종교적 병역 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대법원 판례와 다른 1, 2심 판결이 속출하고 있다. 2004년부터 2016년까지 무죄 판결은 총 13건으로 1년에 한 번 꼴이었는데, 지난해만 45건, 올해는 현재까지 21건의 무죄 판결이 나온 상태다.

병역법 관련 심리는 헌재의 ‘최장기 미제 사건’으로 분류된다. 병역법 88조1항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는 경우 3년 이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정당한 사유’에 헌법상 양심의 자유가 포함되느냐다. 헌재는 2004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해당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이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헌재 결정 직후인 2011년 6월 “국회가 대체복무제도를 입법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며 입법부작위 위헌확인 청구를 냈다.

재판 과정에서 판사가 직접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13년 1심에서 유죄를 받은 이채린(29)씨는 “항소심 판사가 판례에 따르면 유죄를 선고할 수 밖에 없는데 법관의 양심상 유죄를 내리기 힘들다며 헌재의 심판을 받아보게는 게 어떠냐고 제안해 4년 넘게 재판이 중단된 상태”라고 말했다. 판사가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면 헌재 결정 때까지 재판이 중단된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은 작년 11월 인사청문회에서 “기본적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처벌도 감수하는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며 신속한 재판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소장 포함, 헌재의 9명 재판관 가운데 5명은 9월 임기가 만료된다.

서울고법 한 판사는 “앞서 두 번이나 합헌 판결이 나왔던 터라 헌재가 이를 뒤집고 싶어도 논리를 구성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며 “어떤 식으로든 빨리 결론이 나야 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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