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강원 평창군 대관령 양떼목장 인근에 뻐꾸기 시계 같은 작은 집이 하나 들어섰다. 저기선 누가 살까, 저 작은 집에서 생활이 될까, 아니 집이 맞긴 할까. 무한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이 집은 실은 농막이다. 서울의 직장인이 귀농을 꿈꾸며 지은 평창 ‘타이니 하우스(Tiny house)’는 아마 전국에서 가장 예쁜 농막일 것이다.
자연 속 새까만 뻐꾸기 집
농막은 농기구를 보관하거나 농사 짓다가 잠깐 쉬기 위해 농지에 설치하는 간이 건축물이다. 규모는 20㎡(약 6평) 이하에, 전기와 수도 사용에 제한이 있다. 서울에서 여행업을 하며 차근차근 귀농을 준비 중이던 건축주는 일종의 몸풀기로 농막을 짓기로 했다.
“늘 시골생활을 동경했어요. 아파트 작은 화단에서 깻잎 심는다고 가족들한테 혼도 많이 났죠. 그러다 강원도에 땅을 사게 됐는데 덜컥 집을 짓기보단 일단 농막을 지어 농사일을 몸에 익히는 게 좋을 것 같았습니다.”
처음부터 이 정도로 공들여 농막을 지을 생각은 없었다. 그는 그저 “깡통(컨테이너) 하나 놓고 싶진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마음은 건축가 김상기 디엔씨 건축사무소 소장을 만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서울에 사무소가 있는 김 소장은 농막 설계를 의뢰 받고 강원 평창군에 내려온 뒤 주변 경관에 반해 본인도 귀농을 결심하게 된 케이스다. “같이 귀농한 사람들이 여럿이라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았습니다. 특용작물을 심자, 예쁜 집도 짓자, 숲 속에 공연장을 만들자 등등 그림이 커지다 보니 농막 하나도 그냥 지을 수가 없었죠.”
타이니 하우스는 이렇게 사공이 많은 배로 출발했다.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날씨다. 겨울의 무시무시한 폭설을 직접 목격한 건축가는 “여기서 평지붕은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잘못하면 겨울 내내 지붕의 눈만 치우다가 끝날 것 같더라고요. 박공지붕으로 하되 지붕마루를 최대한 높게 잡아 눈이 아예 쌓이지 못하게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거대한 예각의 지붕을 얹은 타이니 하우스는 꿈 속에서 본 집처럼 비현실적인 느낌을 풍긴다. 외벽 자재로 사용한 새까만 나무는 여기에 정점을 찍는다. 건축가는 외벽 자재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생각보다 기후가 훨씬 더 혹독해 나무를 사용하는 게 망설여졌어요. 하지만 주변 자연이 워낙 아름다운 곳이라 인공적인 자재엔 손이 안 가더군요. 결국 오일 스테인으로 도장한 합판을 쓰기로 했습니다. 주기적으로 관리는 필요하지만 내외부에 모두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고 싶었어요.”
검은색은 자연스럽게 결정됐다. 봄 여름엔 초록, 가을엔 빨강과 노랑, 겨울엔 백색 천지가 되는 이곳에서 집이 또 하나의 색을 갖는다는 게 욕심처럼 느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검고 작은 집은 역설적으로 주변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풍경이 됐다. 양떼목장, 철쭉 군락지, 선자령 등 인근 관광지를 찾은 사람들이 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다시 한번 뒤돌아 확인하고” 가는 이유다.
6평 공간에 주방, 욕실까지… 다락은 침실로
한 뼘짜리 내부로 들어서면 눈이 바빠진다. 타이니 하우스의 건축면적은 19.44㎡(5.88평). 서울의 작은 원룸 크기지만, 천장 높이 5.4m에 정면으로 뚫린 통창 덕분에 눈 둘 곳이 넘쳐난다. 건축주는 향후 주거용 건물로 용도를 전환할 가능성을 고려해 당장 사용하진 않더라도 욕실과 주방을 갖춘 집을 원했다. 건축가는 평생 설계한 건물 중 “가장 작은 공간”에 도전하게 됐다.
지붕 아래 2평 남짓한 다락 공간을 이용해 침실을 만들고 1층엔 거실과 욕실, 작은 주방을 배치했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은 책장이자 냉장고 수납장이다. 건축가는 처음에 사다리를 놨다가 “공간 낭비”라는 생각에 나무 상자를 쌓은 형태의 계단으로 바꿨다. 냉장고와 책이 알차게 들어 있는 계단의 정면에는 빔 프로젝터를 놓을 수 있는 공간도 조그맣게 마련했다. 전면 창 쪽에 스크린을 설치해 영화를 보고 싶다는 건축주의 바람을 반영한 것이다.
욕실 바닥엔 타일 대신 나무 바닥을 깔았다. ‘농막 치고는’ 너무 예뻐진 집이 건축가와 건축주의 욕심을 자꾸 부추긴 탓이다. “통상 하던 대로 타일을 깔아도 되죠. 그런데 욕실 슬리퍼를 놓고 싶지가 않더라고요. 외부의 깔끔한 느낌이 내부에서 흐려지지 않길 바랐어요. 좁은 공간에서 신발을 갈아 신는 것도 실용적이지 않은 것 같았고요. 그래서 방수 기능이 있는 천연 방부목을 깔아 욕실을 거실과 한 공간처럼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커튼을 모두 걷은 타이니 하우스는 뚫린 집이다. 정면에 통창을 내고 뒤편 욕실에도 큰 창을 내, 집 앞에서 집 뒤편까지 하나로 시선이 관통된다. 여기에 시공을 맡은 김용철 더플러스파트너스 대표가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하나 더 했다. 집 한가운데 놓인 계단 겸 수납장에 작은 거울을 달자고 한 것. 보통 작은 공간에 개방감을 더하기 위해 대형 거울을 다는 경우는 있지만, 이 집의 거울은 특이한 역할을 한다. 집 앞의 하늘과 나무를 반사해, 바깥에서 보면 마치 집 한가운데가 뻥 뚫린 것처럼 보이게 만든 것이다. 거울에 담긴 초록과 빨강과 노랑은 자연에 묻힌 타이니 하우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액자이기도 하다.
매 주말마다 서울과 강원을 오가던 건축주는 타이니 하우스가 완공된 이후 일주일에 사흘로 머무는 기간을 늘렸다. 낮에는 방울 토마토를 따고 해질 무렵엔 석양을 보며 휴식을 취한다. 멀리 산 중턱에 축산연구소가 있어 소와 양이 꾸물꾸물 풀을 뜯는 게 한 눈에 들어온다. 그는 요즘 “탈주하는 기분으로 온다”고 말했다.
“아직 직장생활 중이지만 마음은 이미 여기에 와 있죠. 서울로 돌아갈 때가 되면 한숨부터 나와요. 타이니 하우스를 지은 뒤부터는 가족들도 여길 좋아해서 생각보다 빨리 내려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창=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