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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누가 더 중한 환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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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누가 더 중한 환자입니까

입력
2018.05.06 14: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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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진료는 중증도 순입니다”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응급실에 가면 누구나 다 다급해 보인다. 의료진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도 “급해서 왔는데 언제쯤 진료가 가능하나요”다. 응급실 문구와 자신의 고통과는 분명 괴리가 있다. 타인의 몸은 내 몸이 아니기 때문이다.

트리아지(Triage)라는 개념은 여기서 시작한다. 환자 중증도 분류라는 뜻으로, 환자의 경중을 짧은 시간에 파악해 치료 순위를 정하고,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지 정한다. 다양한 환자가 24시간 내원하는 응급실에서 주로 쓰인다. 이전에는 한 명의 담당 의료인이 환자의 생체 징후와 호소 증상을 듣고 중증도에 따라 구역을 배정하는 식으로 트리아지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직감으로 파악하는지라 중증도가 잘못 평가되어 동선이 꼬이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이는 사고 위험을 내포했고, “제 진료 순서는 어떤 기준인가요”라는 질문에도 객관적으로 대답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2012년부터 한국형 응급환자 분류도구(Korean Triage and Acuity Scale)를 개발해 현장에서 사용하고 있다. 간단히 KTAS라고 한다. 이는 뒤적거려서 찾는 책자나 도표가 아니라, 누구나 실행할 수 있는 컴퓨터 파일이다. 이 파일에서 161개로 분류된 환자의 주증상 중 하나를 입력하고, 활력 징후와 상태를 기입하면, 환자의 KTAS 점수를 얻을 수 있다. KTAS로 모든 환자는 다섯 단계의 중증도로 나뉜다.

환자의 상태와 KTAS 점수는 전산으로 모든 의료진에게 공유되고, 의료진은 KTAS가 높은 사람부터 진료한다. 권고안에 따르면, 1점은 즉시 진료해야 하고, 2점은 10분 안에 진료해야 하며, 3점은 30분, 4점은 60분, 5점은 120분이다. 일반적으로 1점은 사망 직전의 상태이고, 2점이면 피를 쏟거나 의식이 없다. 3점은 일반 환자 중 악화 가능성이 있는 정도, 4점은 일반 외래 환자, 5점은 경증으로 분류된다.

KTAS는 어디까지나 환자를 분류하기 위한 것이므로 정답은 없고 진료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도 않는다. 그래서 KTAS는 빠른 시간에 점수를 낼 수 있도록 개인적 판단을 허용하도록 느슨하게 맞춰져 있다. 병원 이송 전 단계에서도 KTAS와 비슷한 중증도 분류를 추진하고 있지만, 급박한 현장에서의 오측정 확률과 이송이 늦춰질 가능성 때문에 조율 중이다.

이 트리아지 방법은 이전에 비해 약간의 시간이 더 걸린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 일단 위독한 환자가 간과될 확률이 이전보다 낮고, 환자 동선을 효율적으로 짤 수 있다. 장기적으로 전산화하면 현재 어느 병원의 중증도가 높은지 파악해 환자를 분배할 수 있고, 매년 각 병원의 환자군과 중증도를 파악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자원을 배분할 수 있다. 환자에게도 “저분이 나이가 많고 혈압이 낮기 때문입니다” 대신, “국가와 학회에서 정한 중증도 분류에 따라 저분이 점수가 높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이 대답은 판단 주체를 개별 의료진에서 ‘국가’나 ‘학회’로 객관화하여 안정감을 주기 위함이며, 실제 상황과 응급실 문구와의 괴리를 좁히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응급실 의료진에겐 급한 환자에게 달려갈 의무도 있지만, 누구나 다급한 상황에서 자신이 간과되거나 누락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줄 의무도 있다. 그래서 KTAS라는 개념은 환자의 질문에 정확한 기준으로 답하고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의료진이 노력해왔다는 증거다. 마지막으로 다급한 와중이라도, 더 중한 사람이 고통받고 있을 것이라고, 또한 앞에 있는 의료진은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일 것이라고, 한 번쯤 생각해주길 부탁한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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