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스 13만달러, 코헨에게 갚았다”
“코미, 러 스캔들 수사 때문에 해임된 것”
언론인터뷰서 발언, 트럼프 종전 입장과 배치
다른 참모들은 배제… 트럼프와만 사전조율
美 언론 “새로운 법적ㆍ정치적 위험 초래”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 대응을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법률팀에 최근 합류한 검사 출신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트럼프 대통령 측의 ‘시한폭탄’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신의 본래 업무 범위를 뛰어넘어, 트럼프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이나 제임스 코미 전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 해임 경위, 북한 억류 미국인의 석방 문제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연일 매머드급 폭탄 발언들을 전방위로 쏟아내고 있어서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언급들로 혼돈에 빠진 다른 변호인들이나 백악관 참모진과는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격노하긴커녕 오히려 자신의 종전 입장을 뒤집어가면서까지 맞장구를 치고 있다. 러시아 스캔들 수사에 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 대폭 수정된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줄리아니가 트럼프를 새로운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합의금 지불 후, 매달 3만5000달러씩 갚아”
2일(현지시간) 줄리아니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마이클 코헨이 전직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본명 스테파니 클리포드)에게 건넨 ‘성관계 입막음용’ 13만달러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이 같은 돈을 코헨에게 갚았다고 밝혔다. 앞서 대니얼스는 2006년 트럼프 대통령과 성관계를 맺었고, 2016년 대선 직전 코헨으로부터 이를 함구하는 조건으로 13만달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의혹이 제기되자 코헨은 “(고객인 트럼프를 위해) 개인 돈으로 합의했고, 대선자금과는 무관하다”고 밝혔고, 트럼프 대통령도 이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줄리아니는 “그 돈은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사를 통해 지급됐다”면서도 “대통령은 수개월에 걸쳐 갚았다”고 말했다. 전날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도 그는 “대선 선거운동이 끝난 지 얼마 지나 코헨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서 변제가 이뤄졌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가족계좌에서 매달 3만5,000달러가 나가는 식이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제의 13만달러를 변제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나온 것으로, 이는 결국 최근까지도 ‘합의금 존재’에 대해 몰랐다고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과는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줄리아니의 깜짝 발언에 백악관 참모진과 트럼프 대통령 법무팀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TV를 보고 처음 알게 된 사실”이라며 당황스러워했다. 다른 변호인들도 “왜 그렇게 떠들썩한 방식으로, 전략도 없이 공개했는지 의문”이라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고 NYT는 전했다.
트럼프 “줄리아니 말이 맞다” 돌연 인정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딴판이었다. 그는 이튿날 트위터를 통해 “코헨은 매월 상담료를 받았는데, 이 돈은 대선 캠프에서 나온 게 아니며 대선 캠프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며 “코헨은 그 변제금으로 양측 간 ‘(성관계) 비공개 계약’을 했다. 이런 계약은 유명인사들, 부유층 사이에선 흔한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적인 계약이었고, 선거자금 및 선거기부금은 이 계약에서 아무 역할도 안 했다”고 강조했다. 한달 전만 해도 합의금 지급 사실을 몰랐다고 발뺌하더니, 돌연 줄리아니의 인터뷰 내용을 인정하면서 결국 자신의 말도 뒤집은 것이다. 외견상으로만 보면 줄리아니 때문에 마지못해 사실을 시인한 셈이다.
줄리아니의 좌충우돌 행보는 이뿐이 아니다. 그는 2일 폭스뉴스 ‘션 해니티 쇼’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코미 당시 FBI 국장을 경질한 것은 (러시아 스캔들) 수사 타깃이 대통령이 아니라는 점을 코미가 말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코미가 대외적으로 “대통령은 FBI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공표해 사실상의 면죄부를 주는 것을 꺼려했고,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불만을 품었다는 얘기다. 이 역시 최근까지 “코미는 날조된 러시아 수사 때문에 해임된 게 아니다”라고 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는 차이가 있다.
심지어 북한 억류 미국인의 석방 시점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줄리아니는 3일 폭스뉴스 ‘폭스 앤 프렌즈’ 인터뷰에서 “우리는 김정은을 충분히 이해시켜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3명이 ‘오늘’ 풀려나도록 했다”고 밝혔다. 러시아 스캔들 수사와 관련해 뮬러 특검과의 ‘협상’을 맡고 있는 줄리아니의 본업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있는, 게다가 미국 행정부 내에서도 매우 민감한 주제인 대북 문제에 대해서까지 거침없이 발언하고 나선 것이다.
트럼프의 자충수?... “트럼프 줄리아니 가장 신뢰”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돌출 발언을 이어가고 있는 줄리아니의 영입을 ‘자충수’라고 여기고 있을까. 미 언론의 분석은 그렇지 않다. NYT는 “대통령의 변호인들은 줄리아니가 자신들과 협의는 없었지만 트럼프와는 상의를 한 뒤 ‘13만달러 변제’ 건을 공개한 것이라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CNN방송도 “트럼프와 줄리아니는 백악관 참모들을 (아무 것도 모르는) 어둠으로 내모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면서 “한 소식통은 ‘대통령이 줄리아니가 행한 일들에 대해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고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트럼프와 가까운 일부 보좌관들은 줄리아니의 발언을 오직 대통령과만 약속해 둔 것이며, 이는 줄리아니가 대통령의 법적인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분석이 사실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그 누구보다도 줄리아니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는 게 된다. 이에 대해 NYT는 “줄리아니는 뉴욕 출신으로 트럼프와 비슷한 ‘정치적 거리 싸움꾼’ 성향을 지녔다”며 “트럼프로선 줄리아니가 자신의 전투적인 접근 방식을 도와 주길 바라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CNN은 특히 줄리아니가 ‘북한 문제’를 언급했다는 점에 주목, “(트럼프를 궁지로 내모는) 러시아 스캔들 수사가 대북 문제 해결에 진전을 보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라고 전했다. 뮬러 특검의 트럼프 대통령 대면 조사를 앞두고 러시아 스캔들로 쏠리는 시선 분산을 위해 여러 전선(戰線)에서 폭탄 발언들을 내놓고 있다는 뜻이다.
백악관ㆍ변호인단, 분노와 혼돈 빠져
하지만 이러한 수(手)가 제대로 먹힐지는 미지수다. 13만달러 변제 공개와 관련, NYT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새로운 법적ㆍ정치적 리스크를 야기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우선 법적 측면에서 미 연방 공무원은 전년도 1만달러 이상의 부채를 보고해야만 하는 윤리 규정이 있는데, 지난해 6월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하고 제출한 보고서에서는 코헨에 대한 빚이 빠져 있다. 정치적으로도 줄리아니의 공개 발언이 트럼프 대통령의 진실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데다, 대통령을 방어해야 할 백악관 참모진들을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CNN은 “한 백악관 관료는 ‘줄리아니는 대니얼스 사건뿐 아니라, 코미 해임 논란과 뮬러 특검 수사 등에 있어 트럼프 행정부의 모든 방어 전략을 망쳐 버렸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트럼프의 법률팀 구성원들도 분노와 혼란에 빠져 버린 상태”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팀’의 내부 붕괴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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