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째로 민간 출신 수장 임명
전문성 갖춘 개혁론자 평가
“금융감독체계 개편” 강조
조직 권위 회복 등 현안 산적
금융위와 불협화음 가능성도
신임 금융감독원장에 윤석헌(70)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가 임명됐다. 민간 출신 금감원장 2명이 불명예 퇴진한 자리에 또 다시 민간 인사가 앉는 셈이다. 시장에선 전문성을 갖춘 개혁론자란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우세하다. 만신창이가 된 금감원 조직을 추스르고 금융 개혁에 다시 속도를 낼 것이란 기대도 적잖다. 다만 일각에선 주로 정책 제안을 해온 학자가 집행기관의 수장이 되면서 상위 기관인 금융위원회와 껄끄러운 관계를 형성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청와대는 4일 문재인 대통령이 신임 금감원장으로 윤 교수를 임명했다고 밝혔다. 금융위 관계자는 “폭넓은 식견을 바탕으로 민간 및 공공부문에서 활동해와 급변하는 금융 환경에 적극 대응하고 금융감독 분야의 혁신을 선도적으로 이끌 적임자로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윤 원장은 이날 한국일보에 “금융감독을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최흥식 전 원장이 하나은행 채용비리 연루 의혹으로 낙마한 데 이어 김기식 전 원장도 19대 국회의원 시절 외유성 출장 비판 등에 결국 사퇴하며 어수선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료 대신 민간인을 택한 것은 ‘모피아’(관료+마피아)의 독식을 막고 외부 인물을 통해 금융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 동안 금융 당국을 비판해온 윤 교수가 금감원 수장이 되면서 금융개혁은 다시 힘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해 금융위 정책자문기구인 금융행정혁신위원장으로서 이건희 삼성 회장의 차명계좌에 대한 과징금 부과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영향력은 입증됐다. 때문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이 본격 논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그는 지난 2012년 전성인 홍익대 교수 등과 함께 쓴 ‘금융감독체계 개편, 어떻게 할 것인가’ 논문에서 “지금껏 금융감독 당국이 감독 소홀과 금융회사와의 유착 등 문제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카드사태, 저축은행사태 같은 소비자피해가 발생했다”며 금융감독체계를 정책과 감독 분야로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위는 정책 기능을 가져가고 금감원이 감독 기능을 전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SNS에 “재벌과 관료들은 늑대(김기식)를 피하려다 호랑이(윤석헌)를 만난 것”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윤 원장이 관심을 갖고 있는 이런 과제 대부분은 상위법을 바꿔야 풀 수 있다. 금감원 보다는 금융위 또는 국회 소관이라 한계에 봉착할 수도 있다. 집행기관에 머물지 않고 권한 조정에 나설 경우에는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이제까지 연구해오던 서민금융, 소비자보호 등을 실천하는 것도 좋지만, 조직 내외부 현실도 감안해 조화를 이루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주문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은행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해온 실물 금융 전문가인데다 개혁 성향이지만 금융을 손 볼 대상으로 여기는 규제론자는 아니란 점에서 합리적 인사라고 생각한다”며 “자본시장 쪽은 원승연 부원장한테 맡기는 등 역할 분담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풀어야 할 현안도 만만찮다. 당장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논란 해결이 시급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분식회계라는 금감원의 특별감리 결과에 대해 반발하며 행정소송을 내겠다는 입장이다. 삼성증권 배당 사고에 대한 처벌과 제도개선 방안도 숙제다. 금융권 채용비리 마무리와 무너진 금감원의 권위를 회복하는 것도 새 원장의 몫이다.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윤 원장은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거래소 사외이사, 금융위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한국금융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강아름 기자 saram@hankookilbo.com
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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