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南)캅카스 국가 아르메니아의 현 집권 세력이 결국 성난 민심에 굴복해 반정부 시위를 주도해 온 야권의 총리 후보에 대한 반대를 철회했다. 대통령직 연임에 이어 내각제 첫 총리로서 장기집권을 꿈꿔 온 세르지 사르키샨 전 총리의 시도가 지난달 말 물거품이 된 데 이어, 야권 지도자의 총리 취임도 사실상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이로써 조만간 정권 교체를 맞이할 아르메니아도 2003년 조지아, 2004년 우크라이나 등에 이어 구 소련에 속했던 공화국들 가운데 민주화 혁명에 성공한 나라 대열에 합류하게 될 전망이다.
아르메니아 의회 제1당인 공화당 대표 바흐람 바그다사랸은 2일(현지시간) 밤 야권 지도자인 니콜 파쉬냔 시민계약당 의원과 회동을 가진 뒤, 공화당 소속 총리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파쉬냔 의원이든, 또 다른 인물이든 의회 3분의 1의 추천을 받는 후보를 지지하겠다”며 “아르메니아는 8일 총리를 선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이 ‘파쉬냔 총리 후보’에 또다시 반대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왔던 파쉬냔 의원은 앞서 유일한 총리 후보로 추대됐음에도, ‘반대’ 당론을 정한 공화당이 지난 1일 총리 선출안을 부결(찬성 45표 대 반대 54표)시키는 바람에 총리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자 파시냔 의원은 ‘시민 불복종’을 선언하고 지지자들을 향해 총파업을 촉구했다. 이튿날 수도 예레반 중심부 공화국광장과 주요 거리엔 수만명이 쏟아져 나와 대규모 시위에 나섰고, 마침내 공화당은 하루 만에 파쉬냔 의원을 총리로 지지하겠다면서 입장을 바꿨다. 분노한 민심에 무릎을 꿇은 셈이다. 파쉬냔 의원도 “문제가 실질적으로 해소됐다”며 “내가 총리 후보가 되는 데 모든 정파가 지지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중순부터 아르메니아에선 공화당과 사르키샨 전 총리의 집권 연장 시도에 반발하는 시위가 계속돼 왔다. 대통령직을 연임했던 사르키샨 전 총리는 이달 초 퇴임하자마자 8일 만에 내각제 초대 총리로 선출되면서 1인자 자리로 다시 복귀했다. 그러자 파쉬냔 의원은 지지자들과 함께 반대 시위에 들어갔고, 같은 달 17일 공화국광장에 모인 시위대 규모는 4만명까지 늘어났다. ‘사르키샨 반대’에서 촉발된 시위는 고질적인 부패와 경제난 등에 대한 불만과 결합되면서 전국적으로 확산됐고, 결국 사르키샨 전 총리도 지난달 23일 “내가 틀렸고 파쉬냔이 옳았다”면서 사임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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