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영화제 ‘야키니쿠 드래곤’
재일동포 가족의 척박한 삶 통해
현대사의 강제징용 비극 보여줘
“요즘 사람들은 재일동포의 삶을 잘 모릅니다. 지금 기록으로 남겨두지 않으면 언젠가 잊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전주영화제)의 시작을 알린 영화 ‘야키니쿠 드래곤’을 만든 재일동포 정의신(61) 감독은 영화의 의미를 “기억”과 “기록”에서 찾았다. ‘야키니쿠 드래곤’은 2008년 한국과 일본에서 무대에 올려져 호평 받은 동명 연극이 원작으로, 희곡을 쓴 정 감독이 10년 만에 직접 스크린에 옮겼다. 3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주영화제작소에서 열린 전주영화제 개막 기자회견에서 정 감독은 “연극으로 만들어진 지 10년이 지났는데 전주영화제 개막작으로 선보이게 돼 감사하고 영광스럽다”며 “많은 한국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1957년 일본에서 태어난 정 감독은 연극과 영화를 오가며 폭넓게 활동하는 작가 겸 연출가다. 재일동포 최양일 감독의 ‘피와 뼈’(2004)와 ‘개, 달리다’(1998)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1993) 등을 쓴 시나리오작가로도 유명하다. 재일동포가 일본 사회에서 겪은 차별과 소외의 역사를 꾸준히 다뤄 온 정 감독은 ‘야키니쿠 드래곤’에서도 1970년대 일본 고도 성장기에 주변부로 밀려난 재일동포 가족의 이야기를 그렸다.
정 감독은 “10년 전 연극을 공연했을 때 한국 사람들이 크게 공감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지만 뜻밖에도 많은 분들이 좋아해줬다”며 “한국에서는 두 차례, 일본에서는 이례적으로 세 차례나 공연했는데 영화를 통해 더 많은 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는 일본 오사카 간사이 공항 근처 마을에서 곱창구이 집을 운영하는 재일동포 가족에게 카메라를 비춘다.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이지만 삶에는 왁자지껄한 활기가 넘친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으로 끌려와 해방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일본에 뿌리 내리려 안간힘을 쓰는 부부의 사연에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투영된다. 한국 배우 김상호와 이정은이 부부로 출연해 일본 젊은 배우들과 가족으로 연기호흡을 맞췄다. 한국 배우들은 어색하지 않은 일본어 연기를 선보인다.
정 감독은 “김상호가 굉장히 긴 일본어 대사를 소화해야 했지만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고 완벽하게 해냈다”며 “특별한 요구를 하지 않았지만 감정이 대사에 완벽하게 담겨 있었다”고 극찬했다. 김상호는 “작품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아버지 역할이라 일본 배우들에게 믿음을 주고 싶었다”고 화답했다.
연극에 기반을 둔 작품이라 스크린에서도 무대를 보는 듯한 공간감과 연극적 깊이를 품고 있었다. 김영진 전주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는 “1월에 일본에서 이 영화를 보고 상당한 희열을 느꼈다”며 “우리가 놓치고 있는 보편적 정서를 예술적으로 잘 풀어낸 작품”이라고 평했다. 정 감독은 “작은 가족의 이야기이지만 꼭 후세에 남겨주고 싶다”고 마지막 바람을 보탰다.
전주=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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