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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허점 파고드나

입력
2018.05.02 21:52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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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정부 부당 개입” 협상 요청

투자자-국가 간 소송 이어질 듯

檢, 공시의무 위반한 엘리엇 조사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웹사이트 메인 페이지. 인터넷 캡처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웹사이트 메인 페이지. 인터넷 캡처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우리 정부의 개입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정부를 향한 배상 요구를 공식화했다. 아직은 중재의향서를 제출한 단계이지만 우리 정부가 중재에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조항 중 하나인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이 점화될 전망이다.

엘리엇은 2일 입장 발표문을 통해 “대한민국 전임 정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 배상과 관련, 현 정부를 상대로 협상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엘리엇이 언급한 협상은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투자국 정부를 제소하기 전 중재 의사가 있는지 타진하는 절차인 중재의향서다. 이를 제출한 뒤 3개월 뒤부터 ISD를 제기할 수 있다. ISD는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국 법령이나 제도 등으로 피해를 보았을 때 손해배상을 받도록 한 제도다.

엘리엇은 “전임 정부 및 국민연금공단의 행위는 한미 FTA를 위반한 것으로, 우리에 대한 명백하게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대우에 해당한다”며 "합병을 둘러싼 스캔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형사 소추로 이어졌고, 법원은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게 유죄를 선고했다”고 강조했다.

삼성물산 1주당 제일모직 0.35주 비율로 두 기업이 합병한 2015년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 지분 7.12%를 소유한 3대 주주였다. 엘리엇은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에 부당하다며 반대했고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하지만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삼성 합병을 돕기 위해 국민연금을 상대로 직권을 남용해 1ㆍ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지부 적폐청산위원회가 두 기업 합병 시 국민연금의 찬성 결정을 적폐로 규정하며 엘리엇이 파고들 틈이 생겼다.

국민연금의 찬성 결정이 정부의 정책 변화가 아니고, 합병으로 인한 삼성물산 주식의 손해를 산출하기 어려워 보이지만 중재 결렬 시엔 엘리엇의 ISD 제기가 확실시된다. 정부 스스로 적폐로 인정한데다 이기면 막대한 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는, 손해 볼 게 없는 장사다.

현대자동차 지배구조를 지주사 체제로 개편하라고 요구 중인 엘리엇 입장에서는 두 개의 공격을 통한 동시 압박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최남석 전북대 무역학과 교수는 “주주이익을 최우선으로 내세우고 어떻게든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어 이익을 창출하는 게 헤지펀드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엘리엇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공세에 나서며 과거 공시의무 위반 혐의 검찰 수사에도 다시 불이 붙었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는 엘리엇이 2015년 삼성물산 지분 매집 과정에서 파생금융 상품 총수익스와프(TRS)를 악용해 몰래 지분을 늘린 게 이른바 ‘5% 룰'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고 엘리엇 측 관계자 소환을 통보했다. 5% 룰은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는 5일 이내에 보유 현황을 공시해야 하는 자본시장법상 공시의무를 의미한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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