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개설일 따져 90% 차등과세 법안 발의
더불어민주당이 불법 차명계좌에 대한 금전 제재를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금융실명법 개정안을 내놨다. 2조원대 차명계좌를 운영했는데도 실명제 이전에 만들어진 차명계좌에만 과징금을 물릴 수 있도록 한 현행 규정 덕에 과징금 폭탄을 피해 간 이건희 삼성 회장을 겨냥한 조치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금융실명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1월 이건희 차명계좌 과세 및 금융실명제 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실명법 개정 작업을 해왔다.
차명계좌 개설시기와 관계없이 검찰, 금융감독원 등에 의해 불법 차명계좌로 드러난 경우 과징금과 차등과세를 할 수 있도록 한 게 골자다. 차등과세는 차명계좌에서 발생한 이자와 배당소득에 90%의 세율을 매기는 것을 말한다. 현행 규정은 차등과세할 수 있는 부과제척기간이 10년이다. 2008년 특검 발표로 차명계좌가 드러난 이건희 삼성회장의 경우 2018년까지만 차등과세를 할 수 있는데, 실제 차등과세로 부과된 금액은 상당히 미미했다. 이미 잔액을 다 빼간 뒤라 10년 동안 발생한 이자와 배당소득세 자체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개정안은 이런 맹점을 막기 위해 차등과세를 할 땐 부과체적기간에 관계없이 계좌개설일로부터 실명전환일까지 발생한 이자와 배당소득에 과세하도록 했다. 만약 1990년에 만들어진 차명계좌를 2018년에 실명전환했다면 28년 동안 발생한 이자와 배당소득에 90% 고세율을 물리게 된다는 뜻이다. 금융실명제 시행(93년 8월12일) 이전에 만들어진 불법 차명계좌에만 과징금을 물리도록 한 현 규정도 손질했다. 과징금은 실명제 실시일이 아닌 실명전환일을 기준으로 물리도록 한 것이다. 대신 과징금 부과액수는 현재 잔액의 50%에서 20%로 낮췄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차등과세 요건이 대폭 강화된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 회장은 개정안 시행일 이후 2개월 동안 실명전환을 거치지 않고 잔액만 빼간 차명계좌에 대해선 실명전환을 해야 한다. 이 기간 실명전환을 하지 않으면 남은 잔액의 20%를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 사실상의 소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민주당의 설명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부도 큰 틀에서 동의한 만큼 법 통과가 어렵지 않을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도 금융실명제 개선을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꾸린 상황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 TF를 통해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단계라 정부안을 확정하진 못했다”며 “다만 소급 적용하는 방안은 위헌이란 지적도 있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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