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회사 대표 A씨는 영미권 국가에 신탁회사를 설립한 후, 법인자금 일부와 급여 등 수백억원을 해당 신탁회사에 맡겼다. 이후 재산ㆍ소득 신고 없이 신탁회사를 매개로 고가 주택 등 해외 부동산을 집중 매입했다. 국세청이 해외 신탁회사의 위탁자 및 수익자, 상세 재산내역 등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이후 A씨로부터 재산을 물려 받은 자녀들 또한 해외신탁 재산을 상속세 신고에서 의도적으로 누락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상속세 수백억원을 추징하고, 해외 금융계좌 미신고 과태료 수억원을 부과했다”고 말했다.
제조업체 B사는 해외 현지 계열사인 C사와 수출 계약을 체결한 후 정상적으로 물품을 공급했다. 이후 C사는 ‘제품 불량’ 등 주장하며 납품단가 수백억원을 감액했다. 국세청 조사 결과, 이는 탈세를 목적으로 한 허위 거래였다. B사 사주가 허위 클레임에 따른 납품단가 감액분 수백억원을 빼돌려 해외 계좌에 은닉한 것이다. 국세청은 B사와 사주를 조세포탈 혐의로 검찰 고발했다.
국세청은 2일 이처럼 해외에 소득이나 재산을 은닉한 개인과 법인 39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 대상은 ▦미신고 해외현지법인에서 벌어들인 소득 은닉 ▦총수일가 명의로 해외 금융계좌ㆍ부동산 보유 후 미신고 ▦해외 공사원가 부풀리기 등으로 법인자금 유출 ▦조세회피처 페이퍼컴퍼니로 허위 용역대금 송금하는 등의 방법으로 비자금 조성 등이다. 김현준 국세청 조사국장은 “이번 조사 대상에 대기업 사주나 일부 유명인사도 일부 포함돼 있다”며 “(탈루)혐의금액이 수천억원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국세청은 지난해 역외탈세 혐의자 233명을 조사해 1조3,192억원을 추징한 사실도 공개했다. 이는 2016년(1조3,072억원)보다 0.9% 늘어난 것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또 국세청은 지난해 12월 조세회피처를 이용해 소득ㆍ재산을 은닉한 37명에 대해 ‘집중’ 세무조사를 실시, 이중 23명에 대해 조사를 종결하고 2,247억원을 추징했다고 밝혔다. 당시 조사 대상에는 지난해 11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공개한 국제 탈세 혐의 명단인 ‘파라다이스 페이퍼스’에 등장하는 국내 유력 인사와 대기업 계열사가 포함된 바 있다.
김현준 조사국장은 “해외에 소득ㆍ재산을 은닉하거나 법인자금을 유출해 해외에 비자금을 조성하는 역외탈세 행위에 대해 세무조사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며 “특히 세무전문가의 조력을 받아 조세를 포탈하는 고의적ㆍ지능적 역외탈세의 경우 세무전문가를 조세포탈죄 공범으로 고발하는 등 엄정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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