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변신으로 관객과 시청자들을 웃기고 울렸던 손예진. 필모그래피가 워낙 화려한 탓(?)에 '인생작'을 추리기가 쉽지 않았다. 기자와 손예진 본인이 함께 꼽은 '손예진 인생작 베스트 5'를 소개한다.
▲멜로 영화의 레전드-'클래식'(2003)
"나 어때 보여? 나 지금 울고 있어. 눈물 안 보여? 왜 숨겼어. 앞을 못 본다는 거."
'클래식'(감독 곽재용)은 메마른 남성 관객들의 눈물샘도 자극하는 영화로 유명하다. 손예진과 조승우, 조인성이 주연을 맡아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를 완성했다.
선배 상민(조인성)을 좋아하는 대학생 지혜(손예진)는 우연히 엄마의 비밀상자를 발견한 뒤 엄마가 꽁꽁 숨겨온 옛사랑에 대해 알게 된다. 손예진은 엄마 주희와 딸 지혜, 1인2역을 연기하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열연을 펼쳤다.
특히 조승우(준하 역)가 탄 파병열차를 따라가며 "살아 돌아와야 해"라고 소리치던 손예진의 모습이나, 앞을 보지 못하게 된 조승우를 향해 "나 어때 보여?"라고 묻는 눈물 범벅의 얼굴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명장면으로 남아있다.
▲애틋함의 끝판왕-'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이거 마시면 우리 사귀는 거다." "안 마시면?" "볼일 없는 거지. 죽을 때까지."
건망증이 심한 수진(손예진)은 우연히 만난 철수(정우성)와 불꽃 튀는 신경전을 벌이다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운명처럼 결혼에 골인하지만 수진의 건망증은 점점 심해지고, 알츠하이머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수진은 사랑하는 철수만은 잊지 않으려 애쓰지만 기억은 잊혀지고 만다. 가슴 아픈 두 사람의 이야기는 개봉 당시 256만 관객을 울렸다.
손예진은 지난해 '클래식:배우토크 LIVE'에 참석해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감독 이재한)를 촬영할 당시 심적으로 힘들었던 사실을 고백한 바 있다. 그는 "지금도 제 연기에 비관적이지만 그때는 정말 힘들었다. 계속 제 연기가 이상하다고 느껴졌다"며 "촬영을 모두 끝내고 눈물이 너무 났는데, 정우성 선배가 다독여줬다. 당시 제가 많이 고민을 하고 찍어서 아직까지 좋아해주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멜로 드라마의 교과서-SBS '연애시대'(2006)
"기억이란 늘 제멋대로여서 지금의 나를 미래의 내가 제대로 알 리 없다. 먼 훗날 나는 이때의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2003년 '여름향기' 이후 3년 넘게 스크린에서 활동했던 손예진은 2006년 드라마 복귀작으로 '연애시대'(연출 한지승/극본 박연선)를 선택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기존 드라마와 달리 깊이 있는 느낌이 들었고, 굉장히 작은 얘기를 진실된 대사와 상황들로 전달해 재미있고 감동적이겠다 생각해 선택했다"며 "이제껏 내가 했던 멋지고 아름다운 사랑도 중요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것 같아 특별하게 공감이 가는 듯하다"고 밝힌 바 있다.
손예진이 연기한 유은호는 스포츠센터에서 일하는 보이시하고 털털한 여자다. 이동진(감우성)과 이혼했지만 사랑의 끈을 놓지 못한 채 서로의 주변을 맴돈다. 상대를 향한 감정을 속으로만 삼키며 시청자들의 안타까움과 공감을 동시에 자아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손예진의 인생 캐릭터로 유은호를 꼽곤 한다.
▲남다른 의미가 있었던 도전-'덕혜옹주'(2016)
"저 조선인 이덕혜에요. 왜 제가 거부를 당해요?"
'외출' 이후 11년 만에 허진호 감독과 재회한 손예진은 영화 '덕혜옹주'로 역사 속 실존인물에 첫 도전을 했다. '덕혜옹주'는 일본으로 끌려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이덕혜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려낸 영화다. 개봉 당시 '수어사이드 스쿼드' '인천상륙작전' 등 쟁쟁한 영화들과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고 티켓 파워를 과시했다.
손예진은 자신의 '인생작' 목록에 이 영화를 꼭 추가해 주기를 바랐다. 그는 스타한국에 "처음으로 역사적인 인물을 연기했고 허진호 감독님과 11년 만에 다시 만난 거다. 배우로서 세월이 가는 것과 나이를 먹고 세상을 알아가는 것, 훌륭한 감독님과 작품을 같이 하는 것, (덕혜옹주가) 역사적이고 지속적인 인물이라는 것 등 나에겐 여러가지 의미가 있는 영화"라고 전했다.
또한 손예진은 "여름에 개봉했는데 나 혼자 여배우로서 다른 영화들과 '싸운다'는 표현은 이상하지만 아무튼 부담감이 되게 컸다. 그 인물을 연기하면서 되게 외로웠지만 어찌 보면 고독을 즐긴 거 같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영화가 잘됐고 좋았다"며 "극장 무대인사 때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오셔서 내 손을 잡으시는데 실제 덕혜옹주인 줄 알더라. 거기에서 정말 희열을 느꼈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캐릭터 싱크로율 100%-JTBC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
"나 너 믿어. 늘 믿을 거고. 그러니까 우리 작은 거에 흔들리지 말자. 프로답게."
현재 방영 중인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손예진의 새로운 인생작 탄생을 알린다. 상대역 정해인은 '국민 연하남'으로 떠오르며 광고계의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다. 실제로도 연상연하인 두 사람의 알콩달콩 케미는 시청자들의 잠자던 연애 세포를 재생시킨다는 평을 얻고 있다.
손예진은 기자간담회에서 "아직 '연애시대' 얘기를 많이 해주시는데, 애착이 가는 작품이다. 그때는 어려서 작품의 메시지를 온전히 느끼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를 더 깊이 느낀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은호를 연기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을 하기도 한다"며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윤진아는 지금 내 나이와 싱크로율이 더 맞다. 우리 나이에 느낄 수 있는 여성들의 애환을 대본을 보며 느낀다. 많은 분들이 '연애시대'를 좋아해주셨던 느낌으로 우리 드라마도 사랑해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손예진은 탁월한 감정 연기는 물론, 리얼한 취중 연기와 사랑스러운 댄스, 어리바리 허당 매력까지 선보이며 대체불가 존재감을 뽐낸다. 올해 또 한 편의 인생작이 더해졌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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