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로 일상서 마스크 보편화
남자 아이돌 ‘검은 마스크’ 따라하며
젊은층서 개성ㆍ기능 갖춘 제품 선호
“男 면도ㆍ女 메이크업 안 했을 때
마스크만 착용하면 세상 당당”
자신감 주는 패션 소품으로 인기
“악(惡)은 자신이 못생겼다는 것을 알기에, 마스크(가면)를 쓴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마스크는 오랜 세월 진짜 모습을 가리는 부정적인 소품으로 인식돼 왔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감기에 걸렸거나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아닌 사림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것은 어색하게 여겨졌다.
이랬던 마스크의 위상이 최근 달라졌다. 2015년 관측 이래 사상 최고 농도를 기록한 미세먼지는 마스크를 일상용품으로 만들었고, 유명 연예인들이 착용하는 마스크는 자신감을 부여했다. 이제 마스크는 새로운 패션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시작은 미세먼지, 쓰다 보면 패션
20대 여성 우모씨는 집 현관문에 KF 인증을 받은 일회용 황사마스크를 여러 개 붙여놓았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 아침에 잊지 않고 착용하고 외출하기 위해서다. 겨울이나 환절기에도 감기가 걸리면 꼭 마스크를 쓴다.
미세먼지는 마스크 보편화의 일등공신이다. 최근 롯데의 멤버십브랜드 ‘엘포인트’(L.POINT)는 3,800만 회원의 소비 트렌드를 측정한 결과 지난 3월 황사마스크 소비가 전년 동월 대비 223.2%로 치솟았다고 밝혔다.
아침마다 뉴스를 보며 미세먼지가 ‘나쁨’인지 확인하는 직장인 허모(남ㆍ40)씨도 처음 마스크를 쓰기 시작한 것은 남들처럼 미세먼지 때문이었다. 하지만 편의점에서 산 저렴한 마스크는 미세먼지를 제대로 막지 못했고, 반대로 KF 인증을 받은 보건용 마스크는 일회용인데 비싸고 숨쉬기도 답답했다. 요즘 허씨가 착용하는 마스크는 백화점에서 2만원에 구매한 패션 마스크다. KF 인증은 없지만 교체용 필터를 제공하고 멋과 기능성을 동시에 만족시킨다는 설명이다.
대세가 된 ‘검은 마스크’
마스크가 패션의 반열에 들어선 데는 스타 마케팅도 한몫 했다. 애초 남자 연예인들이 검은 마스크를 쓰기 시작한 것은 팬들의 눈에 띄지 않고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검은 마스크’ 패션이 젊은 남성들 사이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패션 브랜드들이 트렌드를 놓칠 리 없다. 요즘 연예인들은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보란 듯 다양한 무늬가 그려진 마스크를 쓰고 입국한다. 이른바‘공항패션 마케팅’이다.
지난해 9월부터 본격적으로 스타 마케팅을 시작한 패션 마스크 브랜드 ‘르마스카’의 인스타그램엔 아이돌 그룹 멤버, 힙합 가수 등 스타들이 마스크를 쓴 사진이 가득하다. 르마스카 관계자는 “남성 연예인들의 공항패션과 최악의 미세먼지가 만나 급성장하고 있다”면서 “3월 매출이 겨우 한 달 전에 비해서도 3배나 급증했다”고 밝혔다.
런웨이를 활보하는 마스크
지난 3월 말 열린 서울패션위크 2018 FW 컬렉션에서는 마스크나 복면을 쓴 모델들의 워킹이 자주 눈에 띄었다. 신규용ㆍ박지선 디자이너의 브랜드 ‘블라인드니스(BLINDNESS)’는 밀리터리 스타일과 꽃무늬를 복합한 작품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이중 몇몇작품은 진주 장식을 한 마스크, 군복 무늬의 복면 등을 소품으로 사용했다. 블라인드니스 외에도 BESFXXK, 비욘드 클로짓(Beyond Closet), 디앤티도트(D-Antidote) 등 다양한 브랜드가 마스크나 복면을 소품으로 적극적으로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신규용 디자이너는 마스크를 사용한 데 대해 “미세먼지 문제와는 무관하게, 성별의 구별이 없는 ‘젠더리스’ 콘셉트를 표현하기 위해 모델의 얼굴을 가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 디자이너는 그러나 “예전에 비해 거리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일상적인 소품이 됐다는 점이 최근 패션 경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고 말했다. 중국의 디자이너 왕지준도 아이다스 운동화 ‘이지 부스트’ 등 유명 브랜드 운동화를 마스크로 만들어 전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마스크를 쓰면 자신감이 생긴다”
마스크 트렌드의 핵심 키워드가 ‘미세먼지’와 ‘패션’만은 아니다. ‘가린다’는 마스크 본래의 기능도 요즘 젊은이들의 마스크 붐에 영향이 있다. 남성은 면도를 안 했을 때, 여성은 메이크업을 안 했을 때 마스크를 쓰는 경우가 많다.
대학생 주모(남ㆍ23)씨는 인스타그램에 종종 마스크 쓴 사진을 올린다. 면도를 안 했거나 ‘밤을 새워서 모공이 넓어졌을 때’ 가리는 효과가 있다. 대학생 김모(여ㆍ20)씨도 “얼굴 상태가 마음이 안 든다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때 사용한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중인 김모(여ㆍ26)씨는 외모에 투자하는 시간에 좀더 생산적 일을 하고 싶어 마스크를 쓴다. 김씨는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민낯의 여성에 대한 생각이 어떤지 알기 때문에, 다수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했다.
인스타그램에서도 “얼굴의 반 이상을 가려줘서 자신감이 더 생기는 것 같다”“마스크만 장착하면 세상 당당해질 수 있다” 같은 글을 볼 수 있다. 마스크가 외모지상주의 사회를 탈출해 홀로 설 수 있는 자신감을 부여하는 비상구인 셈이다.
최진주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이우진 인턴기자(숙명여대 법학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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