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진작 남북이 통일된 거 아닙니까?”
북한의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은 지난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찾았을 때 한국 체육계 인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탁구는 스포츠에서 가장 먼저 단일팀을 이룬 종목이다. 남북은 1991년 일본 지바 세계선수권에 단일팀을 구성해 여자 팀이 중국의 만리장성을 허물고 정상에 올랐다. 당시 주역이었던 현정화(49) 한국마사회 총감독은 시상식 뒤 “우리가 작은 통일을 이룬 것 같아 기쁘다”고 말해 큰 감동을 안겼다.
탁구가 또 한 번 통일을 꿈꾼다. 1일 대한탁구협회 등에 따르면 현재 남북 선수들이 참가하고 있는 스웨덴 할름스타드 세계탁구선수권을 시발점 삼아 6월의 평양오픈, 7월의 대전 코리아오픈 대회를 남북 선수들이 상호 방문하며 교류를 쌓은 뒤,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단일팀을 구성하는 방안이 적극 추진되고 있다. 일명 ‘할름스타드 구상’이다. 탁구인들은 남북 단일팀이 구성돼 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치른다면 부산에서 열릴 2020년 세계선수권과 같은 해 도쿄올림픽까지 지속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장밋빛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스웨덴의 작은 해변 도시 할름스타드에서 물꼬를 튼 단일팀이 평양-대전-자카르타-부산을 거쳐 도쿄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대한체육회 가맹 체육단체들을 대상으로 8월 아시안게임에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할 의향이 있는지를 타진했는데 탁구가 가장 적극적으로 찬성 의사를 나타냈다.
이런 분위기에서 지난 달 29일 개막해 6일까지 열리는 스웨덴 할름스타드 세계탁구선수권에 남북 탁구대표팀이 나란히 출전해 눈길을 끈다. 한국은 남녀 선수단 외에 유승민(36) IOC 위원을 비롯해 현정화 감독과 유남규(50) 삼성생명 감독, 대한탁구협회 강문수 부회장과 박도천 국제위원장이 모두 스웨덴에 가 있다. 북한도 주정철 협회 서기장이 남녀 선수들을 이끌고 참가했다. 국가대표 출신 주 서기장은 유남규, 현정화 감독과 같은 시기에 운동을 해서 서로 친하다.
물론 할름스타드에서 만난 남북 탁구 관계자들 만으론 단일팀 논의를 진전시킬 수 없다. 지바 세계선수권 코치였던 이유성 탁구협회 부회장은 “북쪽도 윗선의 지침을 받는 게 우선이라 말을 조심할 것”이라면서도 “남북 탁구인은 꾸준히 국제 대회에서 만나 깊은 신뢰를 구축해왔다. 전력의 유불리를 떠나 탁구가 단일팀 구성에 앞장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남북 탁구인 사이에서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6월 13일부터 17일까지 평양오픈, 7월 19일부터 22일까지 대전에서 코리아오픈이 연이어 벌어지는 것도 큰 호재다. 두 대회 모두 국제탁구연맹(ITTF) 공인 국제 대회지만 한국은 지금까지 평양오픈에 한 번도 참가를 하지 않았고 북한 역시 코리아오픈은 늘 불참했다. 그러나 올해는 남북이 서로를 초청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실제로 1일 할름스타드에서 ITTF 총회가 끝난 뒤 핵심 관계자들이 모여 남북의 평양, 코리아오픈 참가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단일팀 논의가 진전되면 6~7월에 평양, 대전을 오가며 대회에 참가하는 건 물론 자연스럽게 합동훈련까지 소화하며 8월 아시안게임을 준비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남북 모두 단일팀 구성에 노하우가 있고 이해도가 높아 결정만 나면 추진은 일사천리일 것”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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