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객관성보다 투명성이 중요
‘당국’ 등 표현은 이제 안통해
‘장애 딛고, 이기고’ 표현은
비장애인의 시각… 자제해야
카톡방담ㆍ이온공감 재미있는데
시각적 전달 방식이 아쉬워
‘인물360도’ 인물들이 식상
‘겨를ㆍ끌림’ 시의성 있어야
한국일보 독자권익위원회 4월 회의가 지난달 18일 본사 18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새로 구성된 4기 독자권익위 첫 회의에는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인 배정근 위원장, 권선희(사이출판사 대표) 김동훈(고려대 정외과 교수) 박홍빈(취업 준비생) 신정호(한국리서치 이사) 신현호(경제 칼럼니스트) 이상민(법무법인 에셀 대표변호사) 이용백(현대상선 대외협력실장) 위원과 간사인 진성훈 오피니언 에디터, 황상진 논설실장이 참석했다.
배정근
첫 회의를 시작하겠다. 대형 이슈 보도와 함께 전반적으로 한국일보를 보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해 보자.
박홍빈
20대 독자 입장에서 남측 예술단의 평양공연 관련 보도는 인터넷 동영상으로 바로 체크할 수 있는 내용을 왜 지면에 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루킹 사건 보도에서는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과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궁금했다. 요즘 독자들은 긴 호흡을 가지고 글을 읽지 않는다. 그래픽을 보고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보가 있으면 그 부분을 찾아서 읽게 된다. 그래픽은 기사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훨씬 더 크게 키워 준다. 한국일보가 그래픽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제2의 근로혁명 길을 묻다’는 시리즈를 4회까지 다뤘으나 시민의 목소리가 느껴지지 않았다. 주52시간 제도는 노동자의 저녁이 있는 삶, 워라밸을 위한 것인데 노동자들의 말이나 사례가 실감 나지 않았다. ‘여성 절반 가까이 펜스룰 지지’(4월5일자 6면)의 제목을 보고 뜨악했다. 한 번의 여론조사로 이렇게 제목을 다는 게 정확한 해석인가. AI(인공지능) 관련한 기사를 자주 다루었다. 독일의 경우 스마트공장과 AI가 도입되면 취업난이 가속화될 것이고 대부분 사람이 직장을 잃을 거라는 위기의식이 심각하다. 이런 문제에 대해 다루지 않아 아쉬웠다.
권선희
연예인들이 인터넷 기사에서 무플일 때 가장 서글프다고 한다. 전반적인 이미지로 볼 때 한국일보는 무플인 상태다. 독자들한테 ‘한국일보’ 하면 딱 하고 각인되는 이미지가 없다. 아직 자리매김이 안 됐단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뿌리 짓눌리고 물관 옥죄여… 보호덮개에 상처입는 가로수’(4월5일자 16면)는 서울 정동길의 251그루를 전수 조사했다. 손품 발품이 많이 들어갔는데 안 읽히게 만들었다.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시각화가 필요하다. 무엇을 전달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전달하는가도 중요해졌다. ‘이온공감’(4월7일자 13면)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요약 정리해 주는 지면인데, 사진이 기사에 임팩트를 주는 부분이 약하다. ‘정치부 카톡 방담: 김기식發 살얼음 정국’(4월14일자 11면)은 일주일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결코 가볍지 않은 기사인데 시각적으로 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상민
기사 임팩트가 부족하다. 남들이 다루지 않는, 한국일보만이 다루고 있는 것을 찾기가 어려웠다. 한국일보 칼럼의 필진들이 굉장히 훌륭하다. 그러나 꼭 읽어 봐야 되겠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많지 않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 사건의 경우 인턴의 고속 승진 등 야당이 제기한 문제를 ‘펙트 체크’하면 좋았겠다. ‘서울 1번가 광화문광장 10년 안 돼 또 성형’(4월11일자 1면)은 자주 바꾸는 것보다는 바꾸는 내용이 적절한지를 더 평가했어야 한다. ‘장애 딛고 IT 전문가 된 선배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 줬어요’(4월18일자 28면)에서 ‘장애 딛고’ ‘장애 이기고’라는 표현은 비장애인 시각에서 본 것으로, 장애인들은 매우 싫어한다.
신현호
금융감독원장은 중요한 자리이고, 아무나 할 수도 없는 자리다. 김 전 원장의 지명 때부터 굉장히 많은 뉴스를 보도했다. 그런데 어떤 기사에도 그가 자리에 적합한 인물인지에 대한 분석이 없었다. 윤리적 측면 이외의 판단 근거가 없다. 외부인의 금융감독체계 개편, 금융을 통한 재벌개혁 포부, 청와대 인사의 적절성 등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필요했다. 인사 청문회를 할 때 국회의원, 보좌관들에게 윤리ㆍ도덕적 측면이 중요하지만 업무 연관성, 전문성, 식견을 짚어야 한다고 말하면, 언론이 한 줄도 안 받아 쓴다고 한다. 기자들을 만나 같은 질문을 하면 아무리 기사를 써 봤자 독자들이 쳐다보지 않는다고 한다. 정치가는 언론 핑계를, 언론은 독자 핑계를 댄다. 최종적으로 우리 사회에 굉장히 중요한 보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독자의 문제가 된다. 많이 아쉬운 점이다.
김동훈
대대적으로 대입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4월 12일자 6면, 4월 13일자 4면). 교육부의 혼돈, 비일관성에 대한 비판은 좋았다. 기사 대부분이 학생부종합전형(학종)과 수시를 비판하고 정시를 선호하는 것 같다. 이러한 판단기준이 되는 팩트 조사를 더 해야 할 것 같다. 고려대만 봐도 수시, 학종으로 들어오는 학생의 가계소득이 정시로 들어오는 가계의 소득보다 높지 않다. 또 수시로 들어오는 학생들의 고등학교가 훨씬 더 다양하고, 정시로 들어오는 학생들은 특목고 출신이 많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보도(4월 9일, 10일, 11일자)에서 공공외교가 부족하다는 기사의 방향성은 좋았으나 단편적이고 혼란스러운 정보만 보도됐다. 지방선거와 관련해 인물중심 기사를 기획한 ‘인물 360도’는 인물이 식상해 안타까웠다.
신정호
단편적인 뉴스의 홍수에 살고 있다. 독자들은 집중 보도된 내용들, 다른 데서는 제공하지 않는 이면의 이야기들을 궁금해 한다. 그런 면에서 ‘中 미세먼지 3가지 궁금증’(4월9일자 3면) ‘트럼프ㆍ시진핑, 싸우면서 속으론 웃는다’(4월9일자 16면)는 좋았다. 전체적으로 한국일보만의 정치 어젠다가 부족하다. 김기식 전 원장 뉴스도 기사의 양으로 보면 가장 많았으나 대부분 상황에 대한 보도였다.
이용백
일본 요미우리 신문사를 방문했을 때 한 달에 한두 자 정도 오자가 난다고 하더라. 일본 특파원 출신 언론인들도 임기 중 일본 신문 오자를 찾는 일이 한두 번이라고 한다. 사소한 팩트가 틀리면 기사 전체의 신뢰성을 상실한다. ‘톡톡Talk: 김동연의 불호령’(4월4일자 21면)에서 김동연 경제 부총리가 아주대 총장을 지냈는데 ‘인하대 총장’으로 나왔다. ‘포스코 50년: 모래벌판에 세운 용광로… 불가능을 녹인 제철보국의 열정’(4월2일자 1ㆍ6면)은 포스코 창립 50주년 특집인데 바로 다음 면에 포스코 광고가 실려 어색했다.
배정근
겉으로 드러나는 기사가 아닌 이면을 보여 주는 기사가 나왔으면 좋겠다. 삼성증권 배당 착오 사건도 안에서 어떤 시스템으로 배당을 해서 저런 일이 발생했나, 김기식 전 원장이 더미래연구소 때문에 결정적으로 문제가 됐는데 더미래연구소는 어떤 조직이고 어떻게 운영되어 왔나 하는 그런 기사가 없었다. ‘민간기업 취업 청탁 만연’ 기사는 전형적인 옛날 방식의 기획기사다. 몇몇 케이스를 들어서 기사를 쓴 게 전부이고 심층성이 없다.
이상민
가려운 데를 긁어 줬으면 좋겠다고 느낄 때 한국일보 기사는 거기서 딱 멈춘다. ‘한미硏 20억 보고서 달랑 2장’(4월10일자 5면) 기사는 한미연구소가 모든 경비 영수증을 제출했다면서 국회에는 두 장만 갔다고 한다. 독자들은 뭐가 진실인지가 궁금한데 기사는 양쪽 입장만 이야기하고 끝난다.
신현호
한미연구소 사안도 그렇지만 국회 업무 대부분은 상임위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언론이 상임위를 방치하는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상임위 회의에 참석하거나 의사록을 읽는 언론이 거의 없다. 진지하게 취재방식을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신정호
독자들은 정상회담과 관련해 한반도를 둘러싼 각국의 이해관계, 한반도 정세의 변화를 궁금해 한다. 남북 정상회담은 냉전시대를 종식했던 몰타회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 분석기사가 필요하다. 수요일 ‘겨를’, 토요일 ‘끌림’을 테마로 해서 다양한 기사들이 나온다. 독자들은 단순하게 테마의 다양성을 선호하지 않는다. 궁금하고 호기심을 줄 수 있는 주제라도 시의성이 적절한지를 생각해야 된다.
권선희
‘국민 46% “성폭력 피해자도 책임”… 가부장적 성관념 여전’(4월5일자 6면)은 여론조사에 의한 기사이다. 한국일보 만의 데이터인데 어젠다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이슈를)좀 더 끌고 갈 수 없나. 이 데이터를 충분히 연관 지어 이슈화시킬 수 있다. 왜 이렇게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는지를 좀 더 다루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배정근
이제는 뉴스가 달라지고 뉴스 가치도 달라졌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서 단순한 사실관계 설명 수준의 뉴스는 가치를 가지기 어렵다. 의미와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지식의 수준에 가까운, 부가가치가 높은 정보와 분석을 신문에서 얻기를 원한다. 그런 기사는 육하원칙 중에 ‘왜’와 ‘어떻게’에 집중하는 기사이다. 기사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자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렵다. 지식인과 전문가들을 네트워크로 구축하고 이들 의견을 제작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한국일보가 좋은 기획기사를 많이 보도하고 있는데, 보다 심층적이고 가치 있는 제안이 되기 위해서는 기획단계부터 전문가 집단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 힘 있는 시리즈를 할 때, 미리 자문위원 교수단, 전문가 그룹 등을 짜고 그분들과 상의해 가면서 진행했으면 한다.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와 같은 한국사회 지식인과 지적 흐름을 다루는 기사도 많아져야 한다.
요즘 미국 언론계에서는 객관적 보도 원칙이 더 이상 중시되지 않는다. 대신 투명성으로 바뀌었다. 사실보다 주장이 앞서고, 정파성이 강한 주장들, 가짜 뉴스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무엇이 객관적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사 보도가 무슨 자료에 근거한 것이고, 취재원이 누구인지를 투명하게 밝히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한국일보의 기사들을 보면 투명하지 않은, 취재원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기사들이 너무 많다. ‘불굴의 진취성ㆍ팀플레이… 세계 통신장비시장 장악한 늑대정신’(4월14일자 10면)은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 기사인데 한 번도 취재 소스를 밝히지 않았다. 한국일보 기사 중에 제일 많은 취재원이 ‘관계자’다. 꼭 필요한 경우, 어쩔 수 없이 취재원을 못 밝힐 경우에만 익명을 써야 한다. ‘사정 당국에 의하면’이란 표현도 자주 등장하는데 구시대적이고 맞지 않는 표현이다.
신현호
취재원의 투명한 공개, 전문가 활용에 대해 동의한다. 회사 차원에서 기자가 인용하는 전문가 리스트들을 조사하면 어떨까. 지난 한 달간 기사에 3번 등장한 교수도 있다. 전문가 멘트를 받는 것은 그 분의 후광을 얻는 것이다. 회사 차원에서 식견 있는 분이 누군지를 개발하고 그런 분들의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김동훈
정상회담, 지방선거 등 대형 이슈가 계속되고 있다. 중요한 사안이 많은데 기사의 경쟁력을 높여 가야 한다. 지식에 기반한 분석기사, 여러 아이디어의 시나리오 기사 등에 대한 고민이 있으면 좋겠다.
정리=이태규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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