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남북 정상회담 사흘 만에 결정
“김정은의 의지 보여 주는 것” 평가
軍 “방송 먼저 중단 땐 北도 호응”
장성급 회담서 합의 전 작업 시작
민간에 대북전단 살포 자제 요청

남북이 정상 간 약속 이행을 위해 전례 없는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북측이 현재 표준시인 ‘평양시간’을 5일부터 30분 빠른 한국 표준시와 맞추겠다고 공표하자, 남측도 당장 대북 확성기 철거 작업을 시작하겠다며 호응하고 나섰다. 마치 양측이 속도전(戰)을 벌이는 형국이다.
30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기존 표준시인 평양시를 5일부로 동경 135도가 기준인 동경시(서울 표준시와 동일)에 맞출 것이라는 내용의 정령(결정)을 채택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북과 남의 시간을 통일시키기 위하여”라는 게 상임위가 밝힌 결정 이유다. 현재 서울 표준시가 평양시보다 30분 앞선다.
평양시 변경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지시다. 통신은 별도 기사에서 “최고영도자 동지(김 위원장)께서 북남 수뇌회담 장소(판문점 평화의집)에 평양시간과 서울시간을 가리키는 시계가 각각 걸려 있는 것을 보니 매우 가슴이 아팠다고 하시면서 북남의 시간부터 먼저 통일하자고 언급하시었다”며 “김정은 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표준시간을 다시 제정할 데 대하여 제의하셨다”고 전했다.
북한의 표준시 변경 결정은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지 사흘 만에 나왔다. 남측이 두 정상 간 대화 내용을 공개하고는 하루 만이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전날 브리핑을 통해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같은 표준시를 쓰던 우리 측이 바꾼 것이니 우리가 원래대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밝혔다.
명문화되지 않은 합의 사항을 북한이 신속히 이행한 건 이례적이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국제사회와의 조화를 향한 김 위원장의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남북 간 화해ㆍ협력을 위한 작은 첫 걸음”이라고도 했다.
남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국방부는 이날 “군은 판문점 선언 후속 조치 차원에서 5월 1일 우선적으로 군사분계선 일대 대북 확성기 시설 철거를 시작할 것”이라며 “선언을 준수하고자 하는 행동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통일부도 대북 전단 관련 단체에 살포 자제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조치는 남북 정상회담 합의 이행 차원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27일 정상회담 직후 서명한 공동 선언문에는 “5월 1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하고 그 수단을 철폐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뜻밖인 건 속도다. 특히 대북 확성기 방송 시설 철거의 경우, 5월에 열릴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북측과 일정에 합의한 뒤 철거 작업을 진행하리라는 게 군 주변의 예상이었다.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한 초보적 단계로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우리가 지난번 확성기 방송을 먼저 중단한 뒤 북한도 중단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북한이 호응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심리전 도구로 활용돼 온 대북 확성기 방송은 1962년 시작된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에 맞서 이듬해 도입된 뒤 남북관계 부침에 따라 중단과 재개가 반복됐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로 시설이 철거된 적도 있지만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뒤 시설이 복구된 데 이어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대응으로 다시 가동되기 시작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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