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지척이네 지척이야.” 평안남도 강서군이 고향인 실향민 1세대 박서형(79) 할아버지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조금은 불편한 다리를 지팡이에 의지한 채, 29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 전망대에서. 남들은 망원경을 들여다보는데 박 할아버지는 그저 ‘맨 눈’으로 북쪽을 지그시 바라볼 뿐이었다. “이제는 망원경으로 보고 싶지 않아. 망원경은 다시 보기 힘든 멀리 있는 걸 볼 때 쓰는 거야. 북쪽 땅이 이제 그런 곳이 아닐 것만 같아.” 전망대에서는 “와 손에 잡힐 것만 같아!”라는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연내 종전 선언, 한반도 비핵화 등의 내용을 이끌어 낸 남북 정상회담 이후 첫 주말, 임진각 비무장지대(DMZ) 등에는 박 할아버지처럼 ‘기대’에 부풀어 북한을 최대한 가까이서 보려는 시민 발걸음이 이어졌다. 북한 땅을 직접 밟는 ‘관광’을 고대하는 목소리도 늘고 있다.
29일 임진각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만 임진각에 1만2,000여명 이상이, 전날에는 1만명 가까이 방문했다. 1,000여대 수용 가능한 임진각 내 주차장은 하루 종일 ‘만차’ 상태였다. 임시로 마련된 주차장(1,000여대 수용)도 가득 차, 발길을 돌리는 시민도 있었다. 하루에 20~30건이던 DMZ 관광 문의는 200건으로 폭증했다. 일부 DMZ 관광상품은 이미 올해 치 예약이 끝났다.
임진각에는 실향민뿐 아니라, 어린 자녀와 함께 온 부모들이 특히 눈에 띄었다. 대개 “자녀들에게 평화가 다가왔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다. 딸(5)과 ‘자유의 다리’를 거닐던 직장인 김병수(37)씨는 다리 끝에서 딸에게 “한국이랑 북한을 이어주던 이 다리가 지금은 끊겨 있는데, 우리 딸이 학교에 들어갈 때쯤이면 다시 이어져 있을지 몰라”라고 차근차근 설명했다.
‘곧 북한에 여행갈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북한의 유려한 자연 명소와 평양냉면 맛집 ‘옥류관’ 등 가 볼만한 북한 여행지에 대한 언급이 끊이지 않고 있다. 평소 평양냉면을 즐겨먹는 김준용(26)씨는 “서울과 평양은 2시간여밖에 걸리지 않는다는데, 냉면 먹으러 당일치기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금강산 관광이 재개될지도 초미의 관심사다. 1998년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2005년 연간 30만 관광객을 돌파했지만, 2008년 박왕자씨 피살 사건으로 10년째 전면 중단 상태다. 2004년 금강산을 여행했던 강승지(28)씨는 “남북이 철도와 도로를 연결한다는 소식에 잊고 지냈던 여행 추억이 되살아났다”라며 “겨울철 ‘개골산’만 느끼고 왔는데 금강산의 사계절을 모두 만끽하고 싶다”고 말했다.
파주=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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