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를 향한 연극에 불과했다’는 일부 비판적 시각도 있지만, 남북 정상의 지난 27일 정상회담에 대해 미국 한반도 전문가들은 긍정 평가하면서도 비핵화 부분에서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를 만들고 북미 정상회담에 긍정적 분위기를 조성했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여전히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판문점 선언의 현실화는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달렸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뤘다..
“남북정상회담은, 두 인물이 세계를 믿게 하려 한 연극 무대”
▦셰일 호로비츠 미 위스컨신대 교수
“판문점 선언문의 전체적 톤은 한미가 분리돼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과는 독립적인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비춰지는데, 이는 김정은이 이번 담판에서 얻으려 한 것일 수도 있다. 예컨대 선언문에는 남북한간 기존 약속을 유지하자는 내용만 있을 뿐, 미국이나 주변국들과 북한 사이에 맺어진 비핵화 프로그램 관련 같은 약속은 빠져있다. 또 남북한이 적대행위를 중단한다고 했는데 만약 미국과 북한이 군사 충돌할 경우에도 마찬가지인지 궁금하다. 그런 뜻은 아닐 거라 보지만 별로 기분 좋은 표현이 아니다.
선언문에는 ‘가장 중요한 부분’도 언급돼 있지 않다. 바로 (북핵 위협이라는) 현재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요소가 빠져있다. 이 회담은 두 명의 배우가 세계를 상대로 (자신들의 선의를) 믿게 하려는 연극무대였다.
핵심 의제를 다루려는 노력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회담 결과가 북미 정상회담에 별로 영향을 줄 거 같지는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경제제재 해제 등의 전제 조건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라고 말해왔다. 이는 북한의 핵 능력을 인정하는 이른바 ‘핵 동결’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의 ‘시간 끌기’ 작전에 대해 준비해야 하고, 왜 타협 불가능한 협상에 임하고 있는지를 설명할 준비도 돼있어야 한다.”
“미북 정상회담 무대 잘 조성”
▦윌리암 브라운 조지타운대 교수
“이번 정상회담 결과에 매우 만족한다. 기대 수준을 충족시켰고 무엇보다 북미 정상회담에 어떤 장애물도 만들지 않았다. 북미 정상회담은 확실해지고 있다. 내가 주목한 지점에서도 이번 정상회담은 긍정적이다. 비핵화가 긍정적으로 언급됐고 문 대통령이 대북제재 해제를 약속하지도 않았다. 경제적 지원과 관련된 부분은 미래의 진전을 가정한 선에서 이뤄졌다.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이전 평양에서의 남북 정상회담과 달리 명백하게 손님으로서의 역할을 받아들였고 많은 행복한 대화들이 오갔다. 다만 미국과 한국 국민들이 이번 회담이 김 위원장의 포용적 태도 때문에 이뤄진 것으로 받아들이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모든 공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대북 최대 압박에 돌아가야 한다.
이번 회담은 문 대통령도 지적했듯이, 핵심 목표인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무대를 잘 조성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더 어려운 일을 앞두고 있는데, 김 위원장이 내린 결정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에게 이해시키도록 시진핑 주석과 문 대통령으로부터 최대한의 지렛대를 얻을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와 개혁으로 방향을 바꾼다면 미국의 협조를 기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계속되는 최대 압박에 직면할 것이다. “
“평화 협정, 장사정포와 미사일 해체 없이는 종이조각”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
“정상회담은 많은 상징으로 가득한, 아름답게 연출된 행사였고 의심할 여지 없이 모든 한국인들의 정서를 흔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1992년 남북한 비핵화 선언,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공동성명에서도 북한은 비핵화를 약속했다. 북한의 비핵화 약속이 이전과 달리 현실화할지는 분명치 않다.
평화 체제를 향한 시도가 진행되는데, 수천 개의 장사정포와 미사일이 그대로 있는 상황에선 평화를 선포해야 봐야 종이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적대적 대립을 끝내려면 상호 군사력 감축을 협상하고 비무장지대에 걸쳐 있는 무기를 제거해야 한다.
이 과정의 종국에선 주한미군의 감축 가능성도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 그 때서야 평화협정이 정당하게 승인될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평화체제로 나아가기 위해선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를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판문점 선언의 현실화는 미국과 북한이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무기를 해체하는 합의를 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문 대통령에게 중요한 성취이뤘지만, 핵 이슈는 부족”
▦박정현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
“이번 정상회담은 문 대통령에겐 미국과의 동맹을 관리하면서 김 위원장과의 기회를 활용한 중요한 성취였다. 정상회담이 남북간 긴장을 완화하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김 위원장의 의지를 시험하는 길을 제공한다면 좋은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 회담은 핵 문제에 관해선 본질적 측면에선 충분치 않았다. 물론 이는 북한이 그 동안 일관되게 서울과 이 문제에 대한 논의를 거부해왔기 때문에 놀랍지는 않다. 우리는 북한과 미국간 정상회담으로 나아가고 있기에 여전히 핵 이슈는 지켜봐야 한다”
“더 나은 결과 도출 힘들었을 것. 북한 목표는 불확실”
▦앤드류 여 카톨릭대 교수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번 정상회담은 남북이 화해의 길로 나아가도록 도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쾌활하고 자신감이 넘치고 심지어 포용력이 큰 모습으로까지 비치며 종전 선언과 비핵화 의도를 시사하는 합의문에 서명했다. 불과 6개월 전 한반도가 ‘화염과 분노’ 문턱에 있었던 상황을 고려하면 문 대통령이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궁극적 목표에 관해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추가적인 단계를 밟으며 진전하기를 희망하겠지만, 미국이 긍정적 태도로 화답하지 않는다면 평화를 향한 모멘텀은 중단될 것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작은 비핵화 조치에도 많은 것을 제공하며 빅딜을 원할 수도 있다. 북미 정상회담이 남북 정상회담 보다 더욱 많은 이해가 걸리면서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이왕구 기자 fab4@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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