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운행 지연ㆍ5만 세대 정전…
번식기엔 사람까지 공격 골머리
일본이 봄철 번식기를 맞은 까마귀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한때 도쿄도(東京都)는 대책팀을 구성해 ‘까마귀와의 전쟁’을 선포해 도내 까마귀 개체 수를 크게 줄였지만, 까마귀가 부화를 위해 전신주에 만든 둥지가 정전 등 잇단 사고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어서다.
지난 23일 요코스카(横須賀)시, 미우라(三浦)시 등에서는 총 5만1,800세대에 정전이 발생해 약 1시간 50분 만에 복구됐다. 원인은 까마귀 등이 전신주 위에 만들어놓은 둥지가 송전선에 접촉하면서 누전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 바람에 미우라에선 65곳의 교통신호가 작동이 멈춰 경찰관이 수신호로 교통 정리에 나서야 했고, 요코스카에선 전철 운행이 일부 지연됐다. 시립병원에서는 응급 환자의 수용을 일시 중단하고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25일 오전엔 센다이(仙台)시에서도 까마귀 둥지가 원인이 되어 총 3,516세대에 정전이 발생했다.
도쿄 등 시내에 서식하는 까마귀들은 나뭇가지뿐만 아니라 공사장에 버려진 철사나 일반 가정집 베란다에 빨래를 널기 위해 내놓은 철사 옷걸이 등을 이용해 둥지를 만들곤 한다. 더군다나 무게도 1㎏ 정도로 만만치 않아 혹여 둥지가 나무 아래로 떨어질 경우 행인들의 안전을 해칠 수 있어 주민들의 민원이 적지 않다.
지난 18일엔 영화 ‘게이샤의 추억’ 촬영지로 유명한 교토(京都)의 명소 후시미이나리타이샤(伏見稲荷大社)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경내 목조 단층 건물 지붕이 일부 훼손됐다. 교토시 소방당국은 지붕에서 초가 발견됐다는 점을 들어 까마귀가 지붕에 초를 떨어뜨려 불이 났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지난 2014년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에 까마귀가 사당 안에 들어가 촛대에 꽂힌 불이 붙은 초를 부리로 쪼는 장면이 있어 까마귀에 대한 심증은 더욱 커지고 있다. 더욱이 번식기를 맞아 신경이 날카로워진 까마귀들이 사람을 공격하는 사례도 보고되면서 공원에 어린이와 함께 산책을 나온 부모 입장에선 걱정거리다.
도쿄도는 2001년 쓰레기봉투를 뜯어 시내를 어지럽히거나 정전을 일으키는 등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까마귀의 번식을 막기 위한 대책팀을 만들었다. 이에 따라 음식점에서 배출되는 음식 쓰레기를 야간이나 새벽 일찍 수집하거나 쓰레기를 쌓아두는 장소에는 퇴치 그물 등을 설치했다. 또 공원에 덫을 설치해 포획했고 전신주나 처마 밑의 둥지 철거를 계속해 왔다. 이 결과 2001년 도쿄도내 3만6,400마리였던 까마귀가 2015년에 1만1,900마리로 크게 줄었다. 최근에는 까마귀의 천적인 매 등 훈련 받은 맹금류를 이용하거나 드론을 활용한 퇴치 작전도 검토하고 있지만 피해 사례는 계속 보고되는 실정이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