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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를 꿈꾸는 불운한 공주 ‘만달리카’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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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를 꿈꾸는 불운한 공주 ‘만달리카’의 부활

입력
2018.04.2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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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롬복 섬의 만달리카 해변
인도네시아 롬복 섬의 만달리카 해변

알랭 드 보통은 불행의 근본적인 이유는 ‘비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주변과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절망감 때문에 사람들은 불안과 불행을 느낀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롬복 섬은 이런 관점에서 불운한 섬이다. 롬복에 대해 세계 미디어는 ‘허니문을 위한 10대 파라다이스(론리플래닛)’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섬 베스트3(영국BBC)’ ‘아시아의 베스트 해변(콘데나스트)’ ‘숨막힐 듯 멋진 비밀의 섬(뉴욕타임스)’ 등 화려한 미사여구로 묘사하고 있다.

이런 롬복이 불운한 건 순전히 ‘발리’ 때문이다. 롬복은 발리에서 비행기로 25분, 배로는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절벽 아래 광활한 바다를 감싸 안은 승기기(Senggigi) 지역에는 예쁜 바와 카페, 맛집들이 밀집되어 있다. 꾸따(Kuta) 지역은 서핑과 다이빙 등 해양스포츠 마니아의 천국이다. ‘윤식당’을 통해 소개된 ‘길리 섬’은 젊은 유럽 여행객이 끊임없는 애정을 보내는 섬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린자니(Rinjani) 산은 트레킹 투어로 인기가 높다.

롬복의 조고 해변
롬복의 조고 해변
바우냘레 축제에 등장한 만달리카 공주
바우냘레 축제에 등장한 만달리카 공주

인도네시아의 섬들이 대부분 그렇듯 롬복도 부족 색채가 강한 곳이다. 사삭(Sasak)족의 독특한 의식주와 바우냘레(Bau Nyale), 무하람(Muharram) 축제 등 롬복에서만 볼 수 있는 문화유산을 체험하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다. 먹거리도 풍성하다. 고추 양념에 재워 굽는 소고기 직화구이 사떼름비가(Sate Rembiga), 땅콩과 고추기름으로 감칠맛나게 비벼먹는 나시뿌융(Nasi Puyung), 갈비탕과 비슷한 브발룽(Bebalung) 등은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발리와 견주기엔 부족하지만 도로와 숙소 등 관광 기반도 웬만큼 갖췄다.

그러나 롬복은 몇 년 안에 발리의 그늘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추진하는 ’10 뉴 발리’ 프로젝트를 가장 빠르게 마무리할 지역이기 때문이다. ’10개의 새로운 발리’ 목록에는 롬복 안에서도 ‘만달리카’라는 구체적인 지역 이름이 명시돼 있다. 만달리카는 롬복국제공항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남부 해안이다. 울릉도보다 조금 작은 52.5㎢의 드넓은 해변이 펼쳐진 지역이다. 이 일대의 숙박시설은 2014년 기준 884객실 정도지만, 만달리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약 5,000객실로 늘어난다. 공항과 연결하는 도로도 넓히는 중인데, 롬복국제공항에서 자카르타ㆍ싱가포르ㆍ쿠알라룸푸르까지는 2~3시간이 걸린다.

발리를 좀 안다면 ‘누사두아(Nusa Dua)’라는 지역을 들어봤을 텐데, 1974년부터 개발해 제주도의 중문단지처럼 고급 리조트와 부대시설이 밀집된 곳이다. 만달리카도 2014년부터 인도네시아 관광개발공사가 이와 비슷하게 관광단지를 조성하는 중이다. 5성급 호텔, 골프장, 개인 별장, 주거지, 해양ㆍ수상스포츠 시설, 워터파크, 그리고 포뮬러1 트랙까지 들어설 계획이다. 현재 노보텔, 로얄튤립, 풀만, 클럽메드, 인터컨티넨털, 웨스틴 및 파라마운트 호텔 등이 건물을 올리는 중이다. 2025년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 만달리카는 숙박과 휴양, 컨벤션 시설을 갖춘 인도네시아 최고의 관광지로 탈바꿈한다.

하지만 만달리카가 발리를 따라잡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사업 초기에 비해 인근 땅 값은 50%나 올랐지만, 기반시설을 다지는 1단계 공사는 진도가 느린 상태다. 부실공사와 환경파괴에 대한 우려도 있다. 발리의 완성도 높은 시설과 서비스를 선호하는 까다로운 아시아 여행자의 입맛을 맞출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특히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중국 여행객 유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럭셔리 관광지로 자리잡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달리카 지역의 현재 모습.
만달리카 지역의 현재 모습.
만달리카 공주가 물에 빠지는 장면을 묘사한 동상.
만달리카 공주가 물에 빠지는 장면을 묘사한 동상.
관광객들이 만달리카 공주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관광객들이 만달리카 공주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만달리카라는 지명은 공주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한때 남롬복의 부유하고 융성했던 톤장베루(Tonjang Beru)왕국의 공주 만달리카는 아름다운 외모와 친절한 성품, 넘치는 지혜로 주변국 왕자들의 흠모의 대상이었다. 결혼할 나이가 되자 공주를 차지하기 위해 왕자들이 각축을 벌였고, 급기야 전쟁의 위기까지 이르렀다. 결국 공주는 본인이 직접 한 사람을 선택하겠다고 공표한다. 이 선택의 순간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세게르(Seger)해변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누구를 선택하건 전쟁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으므로, 공주는 바다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사삭 사람들은 이 시기에 떠오르는 갯지렁이인 냘레가 그녀의 몸과 머리카락이라 믿고, 목숨을 바쳐 왕국을 구한 공주를 기리기 위해 매년 바우냘레 축제를 성대하게 치른다. 공주의 부활처럼 만달리카 지역도 인도네시아의 관광 핵심으로 떠오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박재아 여행큐레이터 DaisyParkKorea@gmail.comㆍ사진제공 인도네시아관광청(VITO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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